왕십리 뉴타운 첫삽은 떴지만…

왕십리 뉴타운 첫삽은 떴지만…

이승호, 정진우 기자
2007.06.19 12:38

[현장르포]보상금·이주대책 논의 '無'…공사까지 험난할 듯

"날씨도 무덥고 보상금과 이주대책도 나오지 않았는데 왜 하필 오후 2시에 기공식을 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지난 18일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1동에 위치한 성동구 공영주차장. 왕십리 뉴타운 2구역 기공식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상기돼 있었다. 32도를 훌쩍 뛰어 넘는 무더위에 햇볕을 가리기 위해 설치한 천막이 사우나 장소로 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기다려온 재개발이 코 앞에 다가왔지만, 정작 보상 및 이주대책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는 가운데 기공식을 강행한 서울시와 성동구에 대한 원망이 한데 섞여 있었다.

↑ 왕십리 2구역에 위치한 상공인 협회실
↑ 왕십리 2구역에 위치한 상공인 협회실

주민 200여명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호조 성동구청장 등이 기공식에서 테이프 커팅과 시삽식을 할 때마다 박수를 보내면서도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기에 바빴다. 30여분만에 싱겁게 끝난 행사 이후에도 각자의 집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토지 보상금은 얼마나 받을 수 있고, 철거 이후 어디로 이사를 가야할지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물론 충분한 시세차익을 받고 집을 팔아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방법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

OO부동산이라고 써 있는 허름한 상가를 찾았다. 5~6평 규모의 이 상가 벽면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선거 참관인 위촉장을 받았던 K씨(65세)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왕십리 일대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K씨는 뉴타운 기공식에서 얻어온 떡을 나눠 먹으며 이웃 주민들과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K씨가 전하는 왕십리 2구역의 집값은 이미 평당 3000만~4000만원대로 뛰어 올랐다. 그는 "예전엔 400만~500만원이면 샀지만, 최근에는 3000만원 이상은 줘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구역이 기공식을 했지만, 실제 공사는 내년에야 가능할 것"이라며 "기공식을 했는데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통상 토지와 건물에 대한 보상금과 이주대책 등 기본적인 전제조건에 대해 주민들과 합의한 이후에나 기공식을 갖는데, 2구역의 경우 진척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어선 상태라 음료수를 사기 위해 OO슈퍼를 찾았다. 왕십리 뉴타운 3구역에 속한 이 슈퍼 주인 P씨(45세) 역시 이웃주민과 모여 재개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P씨는 "2구역에 대한 보상과 이주대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오늘 기공식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1구역과 3구역 사람들은 2구역만 지켜보고 있는데 지켜보기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주위 시세를 알아보기 위해 찾은 J공인중개사의 첫 마디는 "답답해 죽겠다"였다. 뉴타운으로 지정된 이후 매물을 확보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보가 없어 '묻지마 투자'를 조장하고 있다는 자책이었다.

C사장은 "상왕십리 일대는 오래 전부터 저소득층이 모여 살다보니 다른 곳(뉴타운)에 비해 매물이 많은 편"이라며 "다수 원주민들은 재개발 이후 새 아파트에 입주할 형편이 되지 않아 호가가 높을 때 팔고 이사갈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주민들이 의사결정에 참고할 만한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 10월부터 보상이 시작되고 늦어도 내년에는 공사를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감 뿐이다.

C사장은 "기공식을 했지만, 보상금을 얼마나 주고 이주대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관련 정보가 전혀 없지 않느냐"며 "매입자나 매수자, 특히 중간에 일을 도와주는 사람조차 아무런 정보가 없어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고 조언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대지지분이 9평 남짓한 다가구 주택의 집값이 3억2000만원을 넘어서며 평당 350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며 "대지지분이 낮은 주택의 호가는 더 높다"고 전했다.

왕십리뉴타운 2구역내 소상공인협회도 "이주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뉴타운 개발 계획이 발표된 2002년에 만들어진 이 협회에는 금형과 기계·금속업체 693개를 비롯해 모두 1960개의 영세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 약속한 아파트형 공장이나 이주단지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응무 총무는 "서울시가 소상공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뉴타운 기공식을 강행한 것은 그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시는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확실한 이주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십리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상왕십리동에 20년간 거주하고 있는 C씨(54)는 플라스틱 부채를 연신 휘저으면서도 "오래 전에 시작됐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해서 기쁘다"며 "새 아파트에서 살 생각만 하면 꿈만 같다"고 말했다.

같은 동네에 15년동안 살고있다는 K씨(47세)도 "재개발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르겠다"며 "설계도를 보니 기다린 보람이 있는 것 같다"며 주민 80% 이상이 재개발에 찬성했다고 귀띔했다.

"기대가 되지만 서운하고 답답하다"는 어느 식당 주인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10년을 기다려왔는데 좀더 기다리면 되겠지'라고 자조하는 식당 주인의 얼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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