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신이내린 직장인가]퇴출제 도입 연공서열제 파괴
'사오정(40, 50대면 정년) 오륙도(50, 60대에 직장에 남아있으면 도둑) 이구백(20대의 90%가 실업자) 십장생(10대들도 장차 백수)….' 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이처럼 우울한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안정적 직업을 찾는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공시'(公試)(공무원시험을 줄여 부르는 말) 열풍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방학이 시작되면 대학가 주변은 썰렁해지는 반면 공무원시험의 '메카'인 노량진·종로 일대가 북적거리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대학 도서관이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에게 점령된 지도 오래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뿐 아니라 '잘나가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공시에 도전하는 이도 늘고 있다. 기업은 보수가 높지만 사내 경쟁이 치열하고 업무강도가 높기 때문이다. 정년보장에 낮은 노동강도 그리고 정년 뒤 연금혜택까지 받는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다.
◇"공무원은 가문의 영광"=최근 대학가에서는 사법·행정·외무·언론고시 등을 제치고 소위 '금융고시'가 상한가다. '신도 가고 싶은 직장'이란 부러움을 사는 국책은행에 미래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아울러 교사, 7~9급 공무원, 대학 교직원도 '신이 내린 직장'에 들었다. 상대적으로 박봉이지만 보수보다 안정을 선택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층 10명 중 4명이 일반직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공무원 준비생을 포함하면 2명 중 1명(48.5%)꼴에 달한다. 고교 졸업 예정자와 대학 새내기까지 학원가로 몰리는 실정이다. 7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 이모씨(27)는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 '공시' 합격은 '가문의 영광'이란 말이 나돈다"고 전했다.

◇"침몰하는 배(?)"=이런 열풍에 대해 현직 공무원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행정고시를 거쳐 중앙부처에서 13년간 근무한 이모 과장(39)은 새내기 공무원들에게 "침몰하는 배에 올라탔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시대와 달리 '힘'이 대부분 민간으로 넘어갔다"며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만으로는 부족한 측면이 많아 이직을 고민하는 동료가 많다"고 전했다.
영향력은 물론 경쟁력 역시 민간에 뒤진다는 평가다. 산업정책연구원(IPS)이 최근 발표한 '국가경쟁력 연구보고서'를 보면 기업가와 전문가는 각각 15위와 16위로 순위가 높았지만 정치가와 행정관료는 42위로 중위권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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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공직 28년째인 최모 국장(53)도 "10년차까지는 민간(기업)분야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 우월감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현재는 보수나 대우, 경쟁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직업의 안정성도 약화되는 상황이다. '공무원은 형의 선고·징계 처분 또는 법이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않고는 그 의사에 반해 휴직·강임·면직 등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는다'(국가공무원법 제68조)는 조항이 무색해졌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행정자치부가 '공무원 퇴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연공서열제도 무너지고 있다. 일부 중앙부처는 행시 기수를 파괴하는 인사 혁신을 추진하는 등 내부 경쟁도 민간 못지않게 치열해지고 있다.
◇"10년 뒤 공무원은"=인재들이 공직 등 공공부문으로 몰리면서 기업들은 '인재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제조업체 10곳 중 7곳가량이 핵심인재 부족을 호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임원 김모씨(49)는 "글로벌기업과 경쟁해 이겨보겠다는 젊은이들의 패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며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들어가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은 사회·경제적으로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료 역시 "최근 공무원을 하겠다고 인재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면서도 "도전과 모험정신이 실종된 상태에서 과연 10년 뒤 한국이 뭘 먹고 살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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