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머니, 아름다운 소비]<1-1>아름다운 소비자를 위한 7월의 데이트코스

'얘, 혹시 된장녀 아냐?'
선물을 열어보는 순간, 아소남(가명, 29세)은 묘한 불안을 느낀다. 누런 재활용지로 만든 상자 안에는 독일어로 뭐라고 쓴 화장품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어, 고마워. 비싸 보인다. 어떻게 쓰는 거야?"
아소녀(가명, 27세)는 신이 나서 말한다.
"그 파란 건 면도 후에 바르는 로션인데, 카모마일 성분이 들어서 피부 진정 효과가 있대. 빨간 건 스킨, 로션을 하나로 합한 거야. 오빠가 공부하느라 바쁘니까 얼른 바르라고 샀지. 그거 다 유기농 제품이다~."
"유기농에, 독일제면 비싸겠다. 너, 너무 무리한 거 아냐?"
"그까이꺼, 대충 외제 화장품보다는 싸. 오늘 오빠 생일이잖아. 기분 좀 냈어!"
아소남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다. 입 안이 말랐다. 백수 생활 1년만에 그의 자신감은 벌써 바닥 나 있었다. 대학생처럼 참신하지도, 직장인처럼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는 아소녀의 뽀얀 피부와 화사한 화장, 여성스럽고 고급스런 옷차림이 고맙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대기업 정규직이다.
'얘는 아무래도 골드미스가 될 성향이 다분해. 나는 그야말로 고추장남 스타일인데...내가 취직 대신 창업을 한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날 떠나지 않을까? 지난해 만나던 그 애도 불안한 미래가 싫다며 떠났지.'
커피를 다 마시고 아소녀가 가방을 열어 립스틱을 꺼내 바른다. 또 외제다. 그의 시선을 느낀 아소녀가 배시시 웃는다.
"비바글램이야. 색깔 예쁘지?"
그건 또 무슨 브랜드인가? 아소남은 결심한다. 오늘 데이트는 내 식대로 하자고, 그러고도 내가 좋다고 하면 마음을 고백하자고. 만약 그런 걸 싫어한다면? 아소남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아소녀의 손을 잡아 의자에서 일으킨다.
"와~ 아름다운 가게가 여기 있었구나. 이렇게 가까운 데 있는데도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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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남이 아소녀를 데려간 곳은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아소녀는 연신 "싸다"를 연발하면서 이것저것 옷을 고른다. 그녀가 들고온 것은 청치마와 여름용 가방. 모두 합해 6000원이다. 아소남이 자신 있게 지갑을 연다.
아소남은 아소녀의 손을 끌고 근처 밥집 '미재연'으로 향한다. 아소녀는 반찬이 깔끔하다며 밥그릇을 깨끗이 비운다. 새싹 비빔밥 두 그릇에 1만원. 아소남은 계산하면서 말한다.
"전시회 어때? 김상수 작가라고, 요즘 뜨는 사진가래."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 안국동 사거리 희망제작소로 향한다. 아소남은 어렵게 말문을 연다.
"저기, 나, 창업을 할까 해. 취업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여행을 하면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여행사를 차리려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무료로 보내주고."
"어머, 그러면 사회적 여행사네? 멋지다. 쏘시얼벤처대회라고 들어봤어? 7월10일까지 사업아이디어 공모하는데, 1등 상금이 1000만원이나 된대. 한 번 해봐."
아소녀는 반색한다. 신이 난 아소남은 사진전시장에 들어서도 사업 구상을 늘어놓는다. 아소녀가 '잠깐만'하고 그의 귀에 속삭인다.
"이게 사진 맞아? 우와. 이건 블라인드를 찍은 건가봐? 추상화 같다."
작품에 빠진 아소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소남, 시계를 보니 4시다. 예전 여자친구가 준 지구본 모양의 카시오 시계. 문득 가슴이 쓰렸다. 아소녀한테 미안했다. 갑자기 아소녀가 아소남을 돌아보며 말한다.
"참, 5시 공연 예약해놨어. 대학로. 늦지 않으려면 빨리 출발해야겠다."
동숭아트센터의 연극 '썸걸즈(Some Girls)'. 극중에서 결혼을 앞둔 남자는 옛 연인들을 만나러 다닌다. 아소녀를 돌아보니, 남자배우 이석준에 완전히 몰입했다. 아소남,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질투?' 아소남은 자신의 감정이 낯설어 혼자 웃는다.
로비에서 '엑스보이프렌드(X-boyfriend) 물건 기부하기' 이벤트가 열리고 있다. 아소녀가 잠시 고민하더니 긴 머리를 올려 묶었던 핀을 뺀다. 크리스털이 반짝거리는 머리핀을 진행요원에게 주면서 아소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추첨해서 '노이즈 오프(Noises Off)' 티켓 준대. 우리, 9월에 연극보러 또 오자."
아소남도 시계를 푼다. 아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 비싼 걸 왜?'하는 눈빛이다. 아소남은 말 없이 아소녀의 손을 잡고 진행요원에게 시계를 내민다.
"좋은 데 쓰이는 거 맞죠?"
◇기사와 그림에 등장하는 사회공헌 상품들
독일의 친환경, 유기농 화장품 '로고나'는상품 매출의 1%를 아름다운재단에, 물품 일부를 구세군의 여성 쉼터에 기부한다. 가수 나얼이 디자인한 스위딩(Sweething) 셔츠는 국내 저소득층 아동을 위해 판매액의 2%를 기부한다.
맥(MAC)의 비바글램 립스틱은 에이즈 퇴치에, 카시오의 씽크 디 어쓰(Think the Earth) 시계는 아프리카 물 부족 국가 지원에 수익금을 쓴다. 아름다운가게의 재활용 상품은 수익금 전액으로 소외층을 돕는다.
YMCA 평화(Peace)커피는 동티모르 농민을, 아름다운커피는 네팔 농민을 돕는 공정무역 커피다. 우리밀 쿠키인 위캔쿠키는 정신지체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준다. 서울시 재동의 식당 '미재연'은 저소득 여성가장들이 아름다운재단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지원을 받아 창업했다.
김상수 사진전의 입장료 2000원과 작품판매수익은 모두 희망제작소에 기부한다. 연극 '썸걸즈' 관객들이 기부한 옛 남자친구의 물건들은 아름다운가게를 통해 판매돼 소외계층과 풀뿌리 시민단체를 돕는 데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