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IC와 넬슨 최

[기자수첩] KIC와 넬슨 최

박성희 기자
2008.01.17 14:44

한국투자공사(KIC)가 미국 1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를 두고 미 언론은 "1997년 외환위기로 휘청거렸던 한국이 메릴린치 투자를 통해 처음으로 '빅리그'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월가 투자은행의 상징인 메릴린치에 한국이 급전을 댈 수 있었던 데는 '넬슨 최'라는 한국계 미국인이 있었다. KIC의 메릴린치 투자는 연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중국투자공사(CIC)가 세계 금융시장에 돈세례를 퍼붓는 동안 KIC는 이렇다 할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고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던 때였다.

메릴린치가 '한국 국부펀드의 첫 전략적 투자'라는 상징성을 살리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됐지만 KIC로선 첫 발을 떼기 쉽지 않았다. 섣불리 투자를 제안했다 거절 당하는 낭패를 겪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월가 은행권에서도 그동안 보수적 투자로 일관해 온 KIC에 먼저 투자 요청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2월 중순 메릴린치의 새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입성한 넬슨 최가 양쪽의 메신저로 떠올랐다는 후문이다. KIC는 그를 통해 투자 의사를 타진했고 메릴린치는 KIC에 투자를 공식 요청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렇다 할 투자실적을 쌓지 못했던 KIC가 한 월가맨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은행과 원만한 의견 조율을 이뤄낸 셈이다.

게다가 이번 투자는 20억달러 규모의 의무전환 우선주를 인수하는 것으로 연 9% 배당을 받는 조건이다. 메릴린치가 지금까지 2.8%선에서 배당해 온 전례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월가가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는 것이 KIC엔 기회가 됐지만 인맥이 투자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KIC 투자는 한국이 세계금융시장 중심으로 진출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를 갖춰야 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거시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출신 인재를 잘 조직 관리하는 것이 '금융강국 코리아'에 다가설 수 있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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