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기업 직원은 강철심장?

[기자수첩] 공기업 직원은 강철심장?

양영권 기자
2008.05.20 10:22

미국에서 한국인이 자동차 사고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경찰관이 다가가 물었다. "How are you?"

고통스런 표정으로 한국인이 대답했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은 우스개소리다.

감사에 수사에 인사에 그리고 민영화와 구조개혁까지, 연이은 '공기업 때리기'를 취재하던 기자와 공기업 홍보실 직원 사이에도 이와 비슷한 우스꽝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회사 분위기 안 좋겠네요?" "아닙니다. 모든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여섯 군데 홍보실과 통화를 했지만 대답은 한결 같았다.

한 공기업 홍보실 직원은 "이제 모두 안정을 취했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그 회사 사장은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안정을 취했다”는 홍보실 직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회사 직원들은 강철심장을 가졌거나 자기가 몸 담고 있는 회사 미래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홍보실 직원들의 말과 달리 실무 부서 직원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어느 때보다 강도높았던 감사원 감사와 두 달 넘게 걸린 최고경영자(CEO) 물갈이 사태로 정신적으로 소진 상태였다. 여기에 직원들도 '50%를 자른다', '40%를 자른다' 하는 구조조정설이 떠돌아 불안감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친분이 있는 공기업 직원 여러 명이 불확실성과 불안을 참지 못해 기자에게 먼저 자신의 회사 구조조정이 어떻게 돼 갈 것인지 전화와 메신저로 문의를 해 오기도 했다.

한 공기업 직원은 자기 회사에 대해 감사와 수사로 지적된 사례를 언급하며 "앞으로는 아무 일도 안하는 것이 상책"이라며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모두 죽어날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I’m fine”이라는 홍보실 직원들의 대답에선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상부 기관의 눈치를 보느라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심정이 느껴진다. 그들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게 아니다.

그러나 익병자 부득양의(匿病者 不得良醫)다. 병을 숨기면 좋은 의사를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처해 있는 사정과 느끼고 있는 문제점을 바로 털어놓는 것이 공기업이 바로 서고 직원들이 긍지를 갖고 실용적으로 업무에 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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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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