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각 기업 총수의 신년사와 국내 기업들의 시무식, 그리고 신년하례식이 연이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유독 서초동 삼성본관만은 조용하다.
매년 1월9일에 이건희 전 삼성회장과 계열사 사장단은 만찬을 함께하며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곤 했다. 매년 이날 공로를 세운 임직원에게 상금 5000만원과 1직급 특별승격 특전을 주는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을 갖고 사장단과 이 전 회장이 저녁을 함께하는 전통을 이어왔다. 이날은 이 전 회장의 생일이기도 해 이 전 회장과 사장단은 생일 인사를 한 번에 '해결'하기도 했다.
만찬 이후 1주일 이내에 사장단 등 고위 임원 인사가 진행되고 그 후 1주일 이내에 임원 승진 인사 등 후속인사가 이뤄지곤 했다. 이 때문에 사장단 만찬은 새 진용으로 새 출발하는 시발점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 같은 만찬 자리가 마련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이 삼성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데다 주요 경영진을 상대로 한 '삼성사건'의 대법원 상고심 확정판결이 늦어져 해를 넘기는 등 주변 여건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매년 1월2일쯤 열리던 사장단 신년하례식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열리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신년하례식은 물론 사장단 만찬은 한 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의 의미가 있지만 새해에는 열리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사장단 모임 등을 구심점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선보여 왔으나 올해는 계열사들의 각개 전투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창업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실험을 하는 셈이어서 재계가 불안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새해를 맞이한 삼성그룹에서 어쩐지 가라앉은 분위기만 느껴진다. 다른 그룹들이 총수 신년사를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다시 뛰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