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 하려면 공부하고 오세요"

"환헤지 하려면 공부하고 오세요"

반준환 기자
2009.02.18 08:39

은행권, 자통법-키코 손실 여파로 파생상품 거래 요건 강화

중소기업 임원인 김 모씨는 얼마 전 방문한 은행에서 "공부 좀 하고 오라"는 면박을 당했다.

원자재 수입을 검토하던 그는 급등하는 환율이 불안해 환헤지 상품에 가입하려 했으나 신생업체인 데다 파생상품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것이다. 그는 "예전과 달리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환헤지에 대한 지식까지 요구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외화 스팟거래에는 별도의 서류를 받지 않는 반면, 환헤지 파상생품에 대해선 10가지 정도의 서류를 받고 거래 개설을 승인하고 있다.

김 씨가 찾았던 A은행의 경우 거래에 앞서 △투자자 기초정보 △투자성향 분류 △상품설명 요청여부 △기본계약 △선물환거래계약 △헤지수요 조사 △위험고지확인 등 7건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일정 연령(65세) 이상이거나, 파생상품 투자경력이 최소 6개월을 넘지 않으면 거래가 어렵다. 다른 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재 은행들은 기업에 파생상품을 먼저 설명하거나 권유할 수 없다. 고객이 사전에 상품을 이해하고 찾아와 설명을 요청해야 한다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규정 탓이다. 예컨대 "적금 들러 왔다"가 아니라 "3년 만기에 금리는 5% 이상인 적금을 소개해 달라"는 식이어야 한다. 위험도가 낮은 상품을 만들더라도 고객이 먼저 알고 찾아오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다.

자통법은 투자위험이 높은 파생상품에 대해 엄격한 투자자 보호를 요구한다. 특히 환헤지를 위해 기업이 가입하는 통화옵션 등 파생상품은 그물망이 매우 촘촘하다는 평이다. 지난해 중소기업들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서 큰 손실을 본 게 영향을 미쳤다.

복잡한 절차는 은행에 '전문투자자' 신고서를 제출하면 피해갈 수 있으나 대기업이나 상장업체 등에 국한된다. 중소기업은 대부분 '일반투자자' 여서 오랫동안 거래해 상품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거래할 수 있다. 재무전문가가 없는 신설 중소업체는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일부 중소기업들은 키코 피해 관련 소송이 진행중이어서 '전문투자자'로 신고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도 고민이 많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파생상품의 경우 서류가 워낙 많고 내용도 복잡하다 보니 상품 하나 설명하는 데 30~40분이 걸린다"며 "투자자가 다른 상품을 원하면 같은 절차를 반복해야 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전했다.

외환 담당자의 업무 부담은 양극화하고 있다. 외환딜러들은 연일 오르는 원/달러 환율 탓에 매일 전투를 치르는 반면 환헤지 상품판매 부서는 손님을 받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다. 애초 양쪽 업무는 비슷했지만 자통법 규제로 명암을 갈렸다. 외환딜러들이 주로 처리하는 스팟거래는 자통법 규제대상이 아니다. 거래가 3일내 끝나고 투자위험도 상대적으로 낮아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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