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시평]"문제는 디플레야, 바보야!"

[MTN시평]"문제는 디플레야, 바보야!"

최남수 MTN보도본부장
2009.04.26 10:04

한동안 공황, 불황, 위기라는 단어 속에 빠져 지낼 정도로 경기의 급랭이 마음을 어둡게 했다. 금방 숨이 넘어갈 듯한 고통의 소리가 경제 현장 곳곳에서 들려 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과열 논란이다.

증시가 선두에 섰다. 부동자금 800조, 유동성 장세, 풀린 뭉칫돈이 주가를 밀어 올릴 태세다. 그 만큼 걱정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도 비슷한 양상.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이고 가격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하고 일부 분양시장도 기지개를 펴는 모습이다. 급기야 '유동성 과잉'을 우려하는 소리마저 나와 경기의 현주소에 대한 진단마저 헷갈릴 정도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모양이다. 대공황 시절인 1920년 대 후반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죽어가는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정부지출을 중심으로 돈이 많이 풀려 나오다 보니 변덕스런 여론은 바로 인플레를 걱정했다.

이 때 케인즈는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답게 한 마디로 상황을 진압한다. "어떤 개발정책이든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최소한의 위험을 일으키기 전에 엄청난 양의 디플레이션 잔재들을 걷어 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자본지출에 대한 반대의 근거로 인플레이션의 유령을 거론하는 것은 날로 쇠약해지고 있는 환자에게 과도한 비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이다"(1929년 케인즈 에세이 '구두쇠가 부자가 못 되는 이유')

80년 전 케인즈의 이 말에 현재의 경제상황을 보는 해답이 담겨져 있다. 지금 인플레, 유동성 과잉을 걱정하는 건 문제를 잘못 짚고 해법을 오도하는 誤診이다. '엄청난 양의 디플레이션 잔재'를 걷어 내는 게 발등의 불로 떨어진 숙제이다.

상황을 보자. 증시, 부동산 같은 수면 위의 자산시장만 돈의 힘으로 착시현상을 보일 뿐 국민 대다수가 먹고 사는 기반인 수면 밑의 실물 경제는 불황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지난 1분기 경제성적표인 GDP 성장률은 일 년 전 대비 -4.3%로 외환위기 직후 최악의 수준을 나타냈다.

소비와 투자가 맥을 못 추고 수출도 기진맥진한 탓이다. 일부 대기업이 '깜짝 실적'을 보였지만 아직은 일부 '나무'에 불과할 뿐 '숲' 전체에 낀 먹구름은 여전하다. 일자리 사정은 어떤가?

3월 중 실업률은 4%로 실업자 수가 95만 2천명으로 늘어나 백만 명 초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청년 실업률은 8.8%로 청년 10 명 중 한 명이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경기회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미국 경제의 '희망의 빛'은 아직은 희미하다. 소비자물가가 54년에 처음으로 내림세를 기록, 디플레의 傷痕이 뚜렷하며 실업률은 8.5%(4월)로 치솟은 상태다.

미래학자 아탈리는 미국 은행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었다고 진단하고 있다.서브프라임 주택대출 보다 신용도가 높은 알트에이 대출, 신용카드 대출의 부실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경기바닥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사실 언제가 바닥이 될 지 현재로선 가름하기 어렵다. IMF가 본 내년도 우리 경제성장률은 1.5%. 올해가 워낙 죽을 쒀 기저효과(base effect)가 있는 탓이지 이 정도가지고 회복을 선언하긴 이르다.

다시 케인즈의 말. 그는 "인플레이션은 부의 분배에, 디플레이션은 부의 생산에 더 나쁘다'라는 에세이(1923년)에서 설파한다. "디플레이션은 고용에 대재난이다...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예외로 한다면 디플레이션이 더 나쁘다. 그 이유는 빈곤해진 세상에서는 불로소득자들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실업을 야기하는 것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국민 경제 전체를 봤을 때 해답은 분명하다. 일단 재앙인 디플레가 생산과 일자리에 가져 온 충격을 해소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디플레와 인플레를 동시에 잡는 '扁鵲의 처방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한은이 돈을 많이 풀고 정부 곳간을 열어 제친 정부의 선택은 맥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경기 우선, 인플레 나중'의 시각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워낙 경제가 중병에 걸린 만큼 치료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은 그 때 적절한 투약을 하면 된다.

정부로서도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 돈을 많이 풀렸지만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이후 본원통화 10조원 가량이 공급됐지만 정작 광의통화 M2 증가율은 낮아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시장을 기웃거리는 부동자금이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제도적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과거에는 위험을 지나치게 안아 문제였는 데 지금은 위험을 너무 기피해 문제다"라는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의 관점은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돈이 도는 속도가 늘어날 때쯤 되면 과잉유동성에 의한 자산시장 과열과 인플레가 또 다른 골칫거리로 떠오를 것이다.

이에 대비해 돈을 환수하자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펼치기 보다 돈의 흐름을 선순환시키는 대책을 펴나가는 게 올바른 처방전이다. 돈이 흘러 유통속도가 정상화되는 걸 확인한 다음 물가 잡기에 나서도 늦지 않다. 상황이 급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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