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 중단에 방출통로 막혀… 대통령까지 나서 가공용 쌀 공급 확대 주문
정부가 남아도는 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쌀은 넘쳐나는데 쌀 소비는 갈수록 줄어들면서 정부 재고쌀과 수입쌀은 창고에 쌓여만 가고 있다.
정부는 주식용 쌀 소비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쌀라면과 쌀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쌀 가공식품 현장에서 회의를 개최하는 등 지원사격에 나설 정도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 대북지원 재개 등 특별한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이상 정부의 '쌀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축물량만 100만톤 초과=13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보관 중인 공공비축미는 67만톤. 여기에 올가을에 추가 매입할 37만톤을 더하면 100만톤을 넘기게 된다.
10만톤을 보관하는데 들어가는 연간 제반비용이 300억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비축미를 관리하는데만 연간 3000억원의 '혈세'가 쓰인다.
이런 상황에서 쌀 공급과잉에 따라 쌀값이 폭락하자 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농협을 동원해 지난해 생산된 쌀 10만톤을 사들이기로 했다.
세금이 아닌 농협 자금이 사용되지만 쌀 처분 때 발생하는 가격손실분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조건이어서 사실상 정부비축미가 추가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가 농협을 통해 쌀 시장에 개입한 것은 2005년 이후 4년만이다.
농협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데 부담을 느껴서 농협 자금을 이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농협 입장에서는 정부의 짐을 떠안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쌀 의무수입물량(MMA) 처리도 난제다. 국내 쌀 생산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2014년까지 관세화를 유예하는 대신 쌀 수입물량은 매년 2만347톤씩 늘어나도록 돼 있다. MMA 물량 중 밥쌀용 쌀 처리가 사실상 막히는 바람에 MMA 재고물량도 7만톤까지 불어났다.
◇대북 지원 중단이 주요 배경=쌀 재고량이 급증한 데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대북 쌀 지원이 중단돼 '방출통로'가 막힌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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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만 해도 국산 쌀 15만톤과 수입 쌀 25만 톤을 북으로 보냈었다. 쌀 재고량을 조절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 끊긴 셈이다.
'웰빙' 트랜드 등의 영향으로 음식문화가 바뀌면서 쌀 소비가 줄어드는 것도 시장에서 쌀이 넘쳐나는 배경이다. 1인당 연평균 밥쌀 소비량은 95년 106.5㎏에서 지난해에는 75.8㎏으로 급감했다.
예전에는 군대에서 정부 비축미를 주로 소화했지만 전년도에 생산되는 국산 쌀만 군납이 가능토록 규정이 바뀐 것도 정부의 선택 여지를 좁히고 있다. MMA의 경우는 군대·학교 등에 공급이 금지돼 있다.
◇쌀 가공식품으로 활로 찾기=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인천시 강화읍의 한 쌀 가공식품 회사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쌀 잉여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소비진작 방안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쌀 가공식품 회사에서 주요 회의를 주재한 것 자체에서 재고 쌀에 대한 정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농식품부도 이날 '쌀 가공산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해 보조를 맞췄다. 2005년 매입 쌀의 가공용 공급가격을 현재 ㎏당 1446원에서 1000원으로 30% 인하하고 가용용 수입쌀의 할인공급 시범사업(㎏당 705원→355원)을 당초 내년 종료에서 2012까지 연장하는 게 골자다.
또 군대, 경찰, 학교 등 공공부문부터 밀가루 식품을 쌀 가공식품으로 대체하고 쌀 함량비율에 따른 제품명 표시도 엄격하게 제한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생산량 대비 6%에 불과한 가공용 쌀 사용 비중을 1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재고 쌀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면서 장기적으로 쌀 가공식품 육성을 위한 조치"라며 "밀가루에 길들여진 입맛을 쌀가루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