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인문학의 '위대한 기회'

[청계광장]인문학의 '위대한 기회'

이성일 에스지코리아 대표
2009.11.07 11:04

[머니위크]

이성일 에스지코리아 대표
이성일 에스지코리아 대표

2009년의 정리는 참담하기 짝이 없다. 나라빚 사상 최대 역대 1위, 개인빚 사상 최대 역대 1위, 자살률 역대 1위의 자살공화국, 출산율 역대 최하위, 주민등록 말소자 역대 1위,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체납자 사상 최대 역대 1위, 청년 실업자 사상 최대 역대 1위다. 양극화의 심화는 말할 필요도 없고, 세종시와 4대강 개발, 부동산의 급등과 외고 폐지 문제는 국민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OECD국가들과 비교해 보았더니 연간 근로시간은 2316시간으로 부동의 1위이며(2위인 헝가리와 300시간차, OECD평균과는 548시간차), 여가시간과 수면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짧고, 삶의 만족도도 30개국 중 24위로 나타났다.

다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장 적게 자면서 가장 많이 일하고 있지만 삶의 질은 최하 수준인 병든 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사건들에 묻혀 버린 작고 낭만적인(?) 사건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바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대목이다.

하기야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고 그 학문의 기술이 금방 돈이 되지 않는다면 외면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생존을 위협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은 철없고 한가한 양반들의 말장난쯤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좀 멋지게 얘길 하면 인문학의 위기는 사회 지배구조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 같다.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기 전에 우리는 이공계(자연 과학)의 위기를 말했었다. 즉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이 시대의 사회 지배층으로 가는 데는 뭔가 2% 부족해서 외면 받는 건 아닌지?

그런데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경제지 <포춘>에 따르면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 중 80%는 학부 때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중국 지도자의 대부분은 공대나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임이 분명하다. 그건 인문학이 실용학문의 젖줄이자 근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1970년대, 80년대 인문학이 없었다면 동남아와 남미마저 강타하고 있는 지금의 한류열풍이 가능했을까? 21세기의 지구촌은 어느 곳을 막론하고 문화의 시대다. 소위 문화 상품이 가장 강력한 상품으로 성장 할 것이고 자원이 없는 우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른바 문화 자본을 성장시키는 힘이 바로 인문학이다.

또한 호랑이는 호랑이의 무늬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사람(人)의 무늬(文)가 있다. 사람들 간의 질서와 균형, 예의와 매너 등이 그것인데 인문학을 빼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지난 30년 동안 사람들은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하는 시장과 자본 만능의 신자유주의를 믿으며 살았다. 그런데 그 시장과 자본위주의 자본주의 시스템은 사람을 보다 행복하게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자연과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개인적으론 작년 금융위기가 인간의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심도 있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몇해 전 인문학 교수들이 ‘인문학 선언’을 결의했고, 국회에선 인문사회분야의 연구금을 증액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적으로 국가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인문학을 우리 사회와 문화에 연계해 새로움을 창조하고 생산하고 도전하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인문학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나눔을 실천하게 하고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만약 지금까지의 인문학이 대학에서만의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분위기였다면 이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세상과 따뜻하게 손을 잡아야 한다. 위기는 ‘위험하나 위대한 기회’라는 재미있는 해석이 있다. 이 위대한 기회를 어떻게 개척하느냐에 따라 위험한 이 시대에 사람 사는 세상을 한반도에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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