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작전 or 트릭/ 마케팅
스웨덴 스톡홀롬의 한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실험 하나. 계단 옆에 에스컬레이터는 어느 지하철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사람들 역시 당연한 듯 귀찮은(?)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로 발걸음이 향한다.
그런데 이 지하철이 일대 변신을 감행했다. 계단을 피아노 건반 모양으로 디자인을 바꾸고 계단을 밟을 때마다 그에 맞는 소리가 나도록 설계한 것. 이후 에스컬레이터만 이용하던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에스컬레이터 대신 피아노 계단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에는 왜 창문이 없을까?” “백화점 1층에 화장실이 없는 이유는?”
백화점이나 할인마트를 찾은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소비를 유도하는 고전적인 방법. 직접적인 강요나 설득 없이도 부드러운 개입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넛지'의 대표적인 사례다.
사소해서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힘. 쇼핑을 나서는 당신의 걸음걸음마다 이와 같은 마케팅 트릭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자동차 매장에 사람 뒷모습이?
“저게 뭐야? 안에 뭐 있어?” 지나가는 사람마다 호기심이 절로 생긴다. 자동차 매장 윈도우에 붙어 있는 스티커 장식이 그 원인.
지난 9월 현대자동차 투산ix는 압구정, 대학로, 신촌 등 유동 인구가 많은 15개 지역을 중심으로 독특한 ‘윈도우 마케팅’을 벌여 눈길을 모았다. ‘투싼ix Zone’마다 남녀모델의 뒷모습을 부착한 것이 전부다. 실제 사람크기와 똑같이 제작된 스티커를 매장 창문에 붙여놓아 언뜻 지나가다 보면 마치 사람들이 매장 안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다.
박진영 현대자동차 광고팀 대리는 “젊은 층은 자기 개성이 뚜렷해서 직접적으로 소비를 유도하는 문구보다는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넛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윈도 마케팅 이후 고객들의 방문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 박 대리의 설명이다. 아무리 스티커라도 매장에 사람들이 몰려 있으니 그 안을 한번이라도 더 기웃거리게 되는 게 사람 심리. 또 스티커가 뒷모습으로 돼 있다 보니 앞모습이 궁금해서 매장 안에 들어왔다가 쇼룸을 한번 둘러보는 고객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어찌 보면 윈도우에 스티커 하나 더 붙인 것에 불과하지만 소비자들의 발걸음만큼은 확실하게 끌어당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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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복 매장에 문구점
사실 소비자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묘수가 많기로는 백화점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다니는 동선 하나하나에도 소비 패턴을 고려한 치밀한 계산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백화점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선입견 하나. 1층엔 핸드백, 구두, 액세서리 등의 잡화매장이고, 2층 3층은 주로 여성복매장, 4층은 남성복매장. 이렇게 각 층마다 일정한 품목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 백화점을 찾으면 2층 여성복매장에서 구두매장이나 액세서리매장을 발견하기도 하고, 4층 남성복 정장코너에서 비즈니스 문구코너를 발견하기도 한다. 스파이시(spicy) MD. 말 그대로 양념처럼 쇼핑을 즐기는 고객들이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오용석 롯데백화점 홍보팀 과장은 “남성복 매장에 비즈니스 문구코너 등의 매칭숍은 CRM(고객관계관리) 데이터 분석을 통해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을 철저히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배치한다”며 “지난 2005년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매칭숍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최근 들어 더욱 강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백화점에서 소비자들의 쇼핑 루트를 파악하고 미리 동선을 짜주는 셈이다. 여성복을 쇼핑하기 위해 나온 고객이라도 매장 전체를 여성복으로 가득 채워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보다 간간히 쇼핑한 품목과 어울리는 다른 종류의 품목을 배치해 분위기를 전환해주면 실제 매출 증가에도 효과가 크다는 것. 실제로도 매칭숍 이후 10~20% 정도 매출이 증가했다는 것이 백화점 측의 설명이다.
◆옷걸이 간격까지 관리한다
예전에는 의류 매장에서도 손님들이 더 많은 옷을 볼 수 있도록 되도록 많은 옷을 쌓아 두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나 요즘엔 바쁜 고객들이 한눈에 쉽게 둘러보고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 옷을 걸어두는 간격까지 세세하게 신경 쓴다. 이를 위해 백화점 측에서 직접 정기적으로 매장을 둘러보고 관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소비자들이야 눈치 채지 못했겠지만 아동복 매장 역시 최근 들어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진열대의 높이가 10~20cm정도 높아진 것. 기존 진열대의 눈높이는 아이들의 눈높이와 딱 맞는다. 그러나 엄마, 아빠들에게는 낮은 진열대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엄마, 아빠들을 위해 진열대 높이를 조절한 것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쇼핑하라고 창문을 만들지 않던 경향 또한 요즘엔 창문을 더욱 큼직큼직하게 만드는 트렌드로 바뀌고 있다. 소비자들이 건강이나 자연스러움, 편안한 분위기를 더욱 선호하면서 백화점 역시 통유리를 이용해 자연채광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 전환을 꾀한 것이다.
◆세일 땐 빠르고 정신없는 음악을
지난 10월 현대백화점의 가을 정기세일 현장. 백화점에서는 드물게 하루에 20차례씩 같은 곡이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김연아 선수의 이번 시즌 쇼트 프로그램 주제곡인 007메들리가 그 주인공. 자연스럽게 김연아를 떠올려 기분을 좋게 하고 소비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커피전문점 등에 들어서면 으레 나오는 배경 음악. 무심코 흘려버리기 일쑤지만 여기에도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비밀이 숨어있다.
업체들의 매장음악을 전문으로 선곡해주는 KT뮤직의 정윤종 씨는 “보통 매장 음악으로 선택되는 곡은 BPM(음악 템포) 100~110 사이가 대부분”이라고 소개한다. 사람의 심장박동수와 가장 비슷한 템포로 가장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음악 심리학으로 봤을 때도 이보다 템포가 빨라지면 듣는 사람 역시 감정이 흥분되고 충동적인 심리를 발생시키며, 이보다 템포가 느리면 어딘지 차분해진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
저가의 물건이나 생필품을 주로 판매하는 할인마트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비를 유도하는 반면, 고가의 물건을 주로 판매하는 백화점에서는 들릴 듯 말 듯 조용하게 음악을 틀어놓아 소비자들이 보다 오래 생각하고 차분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
정씨는 "특히 백화점에서 종종 벌어지는 특별 세일전 등 매대에 여러가지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판매할 때에는 ‘빠르고 정신 없는’ 음악이 필수"라고 말한다. 빠르고 정신없는 음악을 통해 소비 충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고객이 없는 시간대에는 차분한 발라드 음악 등을 주로 선곡, 매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