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고금리 경쟁, 당국이 부추긴다

퇴직연금 고금리 경쟁, 당국이 부추긴다

박성희 기자
2010.02.24 08:10

자본시장법, '자사 원리금보장상품 운용' 퇴직연금 예외 조항

자본시장통합법 자체가 퇴직연금 시장을 둘러싼 금융업계 내 고금리 출혈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법은 신탁재산을 해당 금융사 혹은 금융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불건전 영업행위’로 명백히 금지하고 있지만,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하 근퇴법)에 따른 특정금전신탁으로 원리금 보장이 필요한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다.

다시 말해 은행이나 증권사들이 자사 정기 예금이나 주가연계증권(ELS)을 퇴직연금에 편입시키는 건 원칙적으로 '불건전 영업행위'지만 당국이 예외 규정으로 이를 허용한 것이다.

자사 상품 운용은 그동안 엄격히 금지됐으나 2005년 근퇴법 도입 당시 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요구로 신탁업법(현 자본시장법)에 예외 조항을 삽입해 이를 허용해 왔다.

이를 근거로 최근 은행과 증권사들은 정기예금 금리가 5% 안팎에 불과하지만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최고 연 8%를 웃도는 1년 만기 정기 예금이나 ELS을 발행해 공격적으로 고객을 유치해 왔다(본지 2010년 2월 17일자 보도).

퇴직연금의 근간인 근퇴법은 기업 및 기관이 금융회사와 퇴직연금 계약을 체결할 때 '신탁계약' 또는 '보험계약'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중 은행과 증권사의 퇴직연금 사업은 신탁계약, 보험사는 보험계약에 해당한다.

증권사 관계자는 "자사 제공 원리금보장상품을 퇴직연금 상품에 포함시키면 내부적으로 역마진을 감수하고 고금리를 제시할 수 있다"며 "최근 은행과 증권사 중심으로 벌어진 퇴직연금 고금리 경쟁도 이를 근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금리 출혈 경쟁으로 자금을 유치할수록 손실이 확대되자 증권사들은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당국에 예외규정 삭제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일찍이 보험연구원에서도 은행의 자기은행예금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게 불공정 경쟁을 심화시키고 금융기관의 부실화와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며 이를 금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금융업계 전체적으로 공정 경쟁 관점에서 무분별한 고금리 경쟁은 지양돼야 한다"며 "예외 규정을 없애거나 자사 원리금보장상품에 대한 제한 규정을 마련해 달라고 당국에 요청해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당시 자행 예금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할 경우 근로자가 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며 "이번 주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가 모여 업계 내 불공정 경쟁 해결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이들 권역의 입장 차이가 커 조율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지난 1월 말부터 대책 마련에 나선 만큼 빠른 시일 내 해결책을 도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