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역내 국가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조달러(7500억 유로) 규모의 대담한 구제계획을 내놓았다. 금융위기로 생사의 기로에 놓였던 미국이 조성한 부실자산구제 프로그램(TARP) 7000억 달러를 크게 넘어서는 천문학적 규모다. 미국을 '신흥 졸부'시 하는 뼈대 있는 '본가' 유럽으로서는 자존심이 걸릴 문제였을 법하다. 통 큰 결정으로 그동안 구겨진 체면을 살리고, 유럽 대륙이 죽지 않았음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책이 수립된 지 4일이 지난 현재에도 유로화는 여전히 약세를 이어가고, 금융권에서는 연일 부정적 전망이 쏟아진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알기 위해선 7500억 유로 규모의 통 큰 결단을 면밀히 뜯어봐야 한다.
이번 구제기금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분을 제외할 경우 유럽이 분담해야 할 금액은 5000억유로다. 이 중 4400억 유로는 새로 설립될 대출기관이 채권을 발행하는 식으로 문제가 생긴 회원국에 수혈된다.
그런데 새 대출기관은 아직 실체가 없다. 이 기관이 채권을 발행해도 누가 이를 흡수해서 유동성으로 바꿔줄지도 미지수다. 물론 유럽중앙은행(ECB)이 채권 물량을 받아줄 의사를 밝혔지만 역내 인플레이션 압박에 직면한 ECB가 대규모의 유동성이 시장에 풀리도록 허용하기도 쉽지 않다.
채권 발행의 보증을 서게 될 실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보증 분담 비중이 그리스 지원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따른다고 가정했을 때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이 보증해야 할 분담금은 전체 33%를 넘어선다. 하지만 이들 국가 역시 이번 국가채무 사태의 핵심으로 지목된 '문제국가'다. 한마디로 전체 지원기금의 핵심인 4400억유로는 '허구의' 기관이 '불확실성'을 담보로 찍어내는 '블러핑(허풍)'일 수 있다.
유럽국들이 위기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낙인찍은 투기세력들은 이미 이를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지도자들이 '이리 떼(wolfpack)'라고 부르는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들은 아직도 유로 하락에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풍`만으로는 이리떼를 절대 쫓을 수 없다. 그리스 등이 금 모으기 운동, 근검 등 한국민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도 이같은 연유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