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상전벽해 588/ 청량리4구역을 가보니
"이곳은 대한민국 축소판이야. 대기업 있지, 종교단체 있지, 재벌 있지, 지주들 있지 상인에 종업원까지 완벽하잖아."
청량리 일대 개발의 노른자에 해당하는 청량리 촉진지구 제4구역을 취재하면서 만난 이 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추진위원회 김인식 감사는 4구역을 미니 코리아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대로 구역 내에는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져 있다. 재벌에서부터 종교단체, 지주, 세입자, 윤락녀까지 대한민국의 모든 계층이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재벌은 롯데그룹이다. 롯데는 옛 롯데백화점 및 주차장 부지 1만1500㎡(약 3500평)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는 청량리 일대가 재정비되면 토지지분 외 건축물에 대한 가치까지 인정받아 상당 수준의 소유권을 누리게 된다. 노후화로 인해 개발구역 내 토지소유자들이 건축물에 대한 가치를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종교단체는 성바오로병원을 운영 중인 천주교다. 지역 내 2대 주주로 7600㎡(약 2300평)를 소유하고 있다. 1944년 제기동에서 수녀들이 시약소를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1957년 단층블록집에서 치료를 하면서 지금의 성바오로병원으로 발전했다. 1961년 가톨릭 의대에 편입된 이래 지역민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진행해 오고 있다. 한때 양주 이전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현재 부지 보상에 대한 협의가 결정되지 않아 존치와 이전을 두고 갈등 중이다.
왕산로에 인접해 있는 도로변 상가 건물주는 대지주다. 비교적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토지 가격도 높아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공시지가로만 3.3㎡당 5500만원을 넘어설 정도다.
대로변에서 철길 방향 안쪽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을 소지주라고 소개한다. 이들은 30~100㎡ 사이의 토지를 소유한 180여명으로 이뤄져 있으며 개발을 주도하는 부류다. 주로 지역 토착민이 많은 편이다. 단위면적당 토지 가격은 대로변의 절반 수준이다.
소지주가 지어놓은 쪽방에서 윤락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의 중산층과 비교된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단속하기 쉬운 집창촌만 타깃으로 삼았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층이다. 이들은 정부의 집창촌 단속이 결국 주택가까지 윤락산업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주장하고 있다.
계층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는 성매매 여성이 있다. 이곳을 찾는 남성들은 이들을 상품으로 볼 뿐이고, 지역민들은 추방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개발 논리에 밀려 결국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은 이미 상당수 해외나 신종 성매매 업소로 ‘갈아타기’를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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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는 잠정 휴업 중
청량리 하면 588이라는 숫자가 붙을 정도로 집창촌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지역이다. 그만큼 이 곳의 토지 소유자는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안고 있다. 수십년째 개발 염불만 외다가 세상을 떠난 지주들도 여럿이다.
"여기 토지 소유자들은 외지인이 거의 없어.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자기 땅 위에 성매매업소가 있다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개발 해준다 해준다 하면서 미뤄진 게 벌써 수십년이라고. 게다가 지금 장사가 안 된다고 집세 안 내고 버티는 세입자들이 부지기수야. 그래도 어쩌겠어. 내쫓으면 그 자리에 다른 세입자가 들어오겠냐고."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집창촌의 수입이 크게 줄면서 월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많지만 집주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게 김 감사의 설명이다. 실제 집창촌을 운영하고 있는 점주의 말도 마찬가지다. 다만 입장은 다르다. 몇 달 뒤 벌어질 일보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분위기다.
"손님이 없어서 월세도 못 내.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 버틸 때까지 버티는 거야. 매번 개발한다 한다 하면서도 지금까지 헐리지 않고 있으니 또 한번 기대해 보는 거지."
음식문화체험복합단지로 개발 중인 동부청과시장 인근에는 소규모 노점상이 여전히 자리를 펴고 과일과 채소를 팔고 있지만 상권이라 하기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초라할 정도다. 시장 상인들은 지난해 청계천 주변 정비계획에 따라 상당수 이전한 상태다. 게다가 지난해 11월 청량리 민자역사 접근성 강화를 위해 시와 동대문구가 도로 확장 명목으로 이 지역 집창촌 77세대를 철거하면서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현재 이곳은 가림막을 설치해놓고 건축기자재를 쌓아놓은 상태다.
낮에는 시장 상인과 시장 손님들을, 밤에는 윤락업소 종사자와 성매수자들을 대상으로 영업했던 이 지역 영세상인들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집창촌과 등을 맞대고 있으면서 2차선 도로 건너편으로 동부청과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한 소매상점 업주는 "오며 가며 담배라도 사려는 사람들마저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면서 "다른 자리라도 알아봐야 하는데 싼 자리가 없어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독특한 개발방식, 투자 손실 가능성 높아
55층 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서는 청량리 제4구역의 개발방식은 토지 등 소유자방식이다. 조합을 만들어 개발하는 방법 대신 생소한 개발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토지 소유자가 적어서다.
조합방식과 가장 큰 차이점은 조합설립 추진위원회 구성이나 조합 설립인가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협의회를 구성해 바로 사업시행인가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소유자의 4분의 3 이상 동의를 거쳐 정관이나 규약 등을 미리 결정해야 한다. 주로 의견취합이 용이한 구역에서 진행된다. 토지 소유자가 한자릿수에 불과했던 청진동 일대가 이 개발방식을 택했다.
기존 재개발 방식에 비해 개발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법적 제한이 뚜렷하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토지 등 소유자방식에서 조합방식으로 갈아탄 사례가 많다는 점에서 토지 소유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오히려 개발기간이 늦춰질 우려도 있다.
개발 방식에 대한 리스크에다 과거와 달리 높은 분양가를 책정하지 못하는 한계 등으로 인해 이 지역 투자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일부 금융기관에서는 집창촌이라는 특성 때문에 대출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투자 시 금융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