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탈 상장사 투자의 딜레마

벤처캐피탈 상장사 투자의 딜레마

이상균 기자
2011.05.09 07:29

더벨|이 기사는 05월03일(08:18)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지난해부터 벤처캐피탈은 10년만에 찾아온 '봄'을 한껏 만끽하고 있다. 펀딩이 수월하게 이뤄진 덕분이다.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는 집안의 곳간이 두둑해진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는 셈이다.

투자규모도 커지고 있다. 예전에 50억원을 넘는 투자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100억원 이상의 투자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투자 대상도 비상장사 일색에서 코스닥 상장사로 확대되고 있다. 펀딩 규모가 커진 것이 투자 규모의 확대로 이어지는 모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최근 이 같은 벤처캐피탈의 투자행태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코스닥 상장사 투자를 벤처투자로 간주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벤처캐피탈들이 벤처기업을 발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손쉽게 상장사 투자에 매달리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펀딩과 투자규모가 늘어난 것에 비해 심사인력을 늘리는 등 내부 노력은 병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벤처캐피탈 관계자들도 할 말이 많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100억원 규모의 조합이 있다면 보통 10개에서 많아야 15개 정도의 투자가 이뤄진다. 1개 기업 당 투자규모는 10억원 수준이다. 초기기업 투자에 적당한 규모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합 규모가 커지면서 1000억원 이상의 조합도 늘어나고 있다. 사모투자전문회사(PEF)에 비견할만하다. 이런 조합도 투자 기업의 숫자는 10~15개다. 사후관리를 감안하면 투자기업 수가 더 늘어나기 힘든 게 엄연한 현실이다. 자연히 1개 기업 당 투자규모도 100억원에 육박하게 된다.

코스닥 상장사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장하지도 않은 벤처기업에 선뜻 100억원을 투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벤처기업이라고 해봐야 투자당시 기업가치(valuation)가 100억원을 넘기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100억원이 투자되면 사실상 경영권 확보까지 가능해진다. 투자가 아니라 인수합병(M&A)이 이뤄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투자는 자연히 규모가 큰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코스피 상장사를 제외하면 코스닥 상장사가 유일한 대안으로 남는다.

한국벤처투자(모태펀드) 조차 상황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조합 약정 총액의 20~40% 수준에서 상장사의 CB나 BW를 인수하는 등의 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국내 경제의 규모가 커지면서 벤처기업을 반드시 비상장사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코스닥 상장사 중에서도 벤처캐피탈의 투자가 절실한 벤처기업이 적자 않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상장 이후 기술력은 갖췄지만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라져가는 코스닥 기업이 부지기수인 게 사실이다.

잊고 있는 사실이 또 있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는 벤처조합과 PEF를 구분 짓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국내에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만든 창업지원법 등 관련 법 덕분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PEF와 벤처조합은 규모의 차이일 뿐이며 구분 자체가 점점 더 무의미해지고 있다. 오히려 각종 규제가 많은 벤처조합보다는 PEF를 만들어 벤처투자하는 것이 더 쉽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어찌보면 이 같은 논쟁도 벤처캐피탈에 대한 과도한 규제의 후유증이 아닌지 의문이다. 앞으로 10년 뒤 벤처캐피탈들이 창업투자회사 라이선스를 버리고 PEF만 운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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