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일해 중소기업에서 벗어났더니 벌써 대기업 수준의 규제를 받고 있네요."
매출 20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인샘표식품(51,800원 ▼900 -1.71%)박진선 사장이 작심한 듯 고민을 털어놨다. 지난 13일 중견기업위원회의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그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무엇보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여부다.
샘표식품은 60년 넘게 장(醬)류를 만들며 중견기업으로 커왔고, 현재 간장이 이 회사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기류에 장류도 적합업종 대상에 올랐고, 샘표는 주업(主業)을 잃게 될까봐 맘을 바짝 졸이고 있는 처지다. 그는 "분명히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다른데 규제는 동일시하고 있다"며 중견기업에 '적합한' 정책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난 3월 '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중소기업 범위를 벗어났지만 상호출자제한 기업 집단에 속하지 않는 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규정됐다. 그런데 전체 사업체의 0.4%(1200여개)에 불과한 '마이너 집단'인 중견기업들은 중소기업이 받는 160개의 혜택을 잃게 되는 반면 대기업 수준의 엄격한 법적 규제를 받는 현실이다.
때문에 이날 처음으로 간담회를 열고 함께 자리한 다른 중견기업 대표들도 이구동성으로 '정책 사각지대'에 놓였다며 "성장 의욕이 꺾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기업은 수출 위주 정책으로 연일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 또 중소기업은 '동반성장'에 대한 여론의 뜨거운 지지로 힘을 받고 있는데 중견기업은 소외감만 느낀다는 것이다. 마치 '어른'도 미성년자도 아닌 성년식을 갓 마친 한 젊은이의 정체성 혼란을 지켜보는 듯하다.
중소기업이 스스로의 노력과 기술을 통해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큰 경우는 불과 NHN·웅진·휴맥스 등 단 3곳 뿐.
한 교수는 "중소기업이 활주로 단계를 벗어나 중견기업으로 이륙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정부 지원과 사회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고민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분화된 '과거형' 산업구조에서 벗어나긴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