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7월14일(08:34)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교수 출신의 벤처기업 A사장이 있었다. 5년간 열심히 기업을 경영했지만 매출액은 10억원을 넘지 못했다. 영업이익을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름 기술력에 자신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자본력이 없는 마당에 사업화가 어려웠다.
그 와중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자신이 보유한 휴대폰 부품 기술의 공동개발을 제안했다. 물론 공동 특허보유를 전제로 했다. 갈등이 됐지만 A사장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회사를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사업은 순풍에 돛 단 듯 순항을 거듭했다. 2년만에 매출 70억원, 영업이익 30억원을 돌파했다. A사장은 3년만 잘 성장시키면 기업공개(IPO)도 가능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대기업은 이 회사와 공동으로 보유한 특허기술을 경쟁사에 이전시켰다. 납품단가를 낮추기 위해서였다. 피 터지는 단가 인하 경쟁이 이어졌다.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영업이익은 3억원도 채 되지 않았다. 결국 2년을 버티지 못하고 A사장은 백기를 들었다. 치를 떨며 대기업과는 앞으로 사업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대기업에서 또 다시 사업제의가 들어왔다. 조건은 이전과 동일했다. “특허기술을 공동 보유해야 하고 다른 대기업에 납품을 하면 안 된다. 언제든지 실사를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등이다.
A사장은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조건을 다시 받아들이겠냐.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며 흥분했다. 대기업의 과장은 “제안만 받아들인다면 매년 50억원 이상의 매출이 보장된다. 규모가 작지만 수억원 이상의 이익을 낼 수도 있다. 다시 예전처럼 구멍가게 수준의 사업을 하고 싶으냐”고 되물었다.
몇주간 곰곰이 생각하던 A사장은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기업 밑에서 당하는 수모는 견디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 수준의 매출을 보장해주는 곳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구멍가게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갈망이었다.
벤처투자 시장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국내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도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벤처캐피탈이 벤처기업에 투자를 하면서 가장 눈여겨보는 것 중 하나가 대기업에 얼마나 많은 물량을 납품하느냐다. 벤처기업도 투자유치를 위한 기업설명회(IR)에서 대기업과의 친밀도를 자랑하곤 한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하청을 받아 40~50대에 창업을 하는 사장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벤처투자 열풍이 급속도로 식은 이후 이런 안정지향적인 창업과 투자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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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벤처업계에서 틈새시장 혹은 핫(hot)한 아이템은 사라진지 오래다. 지난 1년을 되돌아봐도 대기업과 무관한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 사례는 티켓몬스터를 필두로 한 소셜커머스 시장이 거의 유일하다.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대기업의 우산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다. 폭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자신이 직접 우산을 쓰고 나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A사장이 선택한 것처럼 중소기업은 작은 이익에 만족하며 그 상황에 순응하는 셈이다.
하지만 극심한 경쟁과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 속에 대기업조차 한번의 판단 착오로 고꾸라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폰 변화에 고전하는 노키아와 LG전자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조차 현재의 변화를 선도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문제는 A사장처럼 대기업의 울타리에 안주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보다는 안정적인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에 만족하고 있다. 국내 경제도 점차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장맛비가 내리는 하늘처럼 벤처시장의 앞날도 어두워지고 있다. 병아리가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는 껍질을 깨야한다는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