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신라면 블랙과 뉴 코크

[기자수첩]신라면 블랙과 뉴 코크

오정은 기자
2011.08.31 06:01

1985년 코카콜라 회장 로베르토 고이수에타는 매출 감소와 펩시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빅 카드를 빼들었다. 수천 번의 테스트를 거쳐 단 맛을 부각시킨 야심작 '뉴-코크'를 출시했다. 코카콜라의 막강 브랜드 파워를 등에 업고 뉴-코크는 기존 제품 대신 진열대에 올랐다.

그러나 뉴-코크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기존 코카콜라와 다른 제조법으로 만든 데다 사전 소비자 테스트에선 압도적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본 무대에서 소비자들은 뉴-코크를 집어 들지 않았다. 코카콜라가 뉴-코크 생산을 접기까지는 고작 77일이 걸렸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을 쓴 알 리스는 뉴-코크 실패 원인을 기존 코카콜라에 길들여져 있던 소비자의 입맛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은 뉴-코크를 자신들이 먹던 콜라가 아니라고 여겼다. 코카콜라라는 거대 브랜드가 순식간에 증발할 수 있는 위기감이 엄습해온 것이다.

농심이 신라면의 아성을 잇겠다며 선보인 '신라면 블랙' 생산을 중단한다고 30일 밝힌 것도 뉴-코크 사례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정말 맛있으면 비싸도 다시 사먹겠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 값 주고 다시 사 먹을 정도까지 맛있는 건 아니었다."

이날 트위터에는 신라면 블랙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잇따랐다. 하루 200만 봉지를 생산하는 메가 브랜드 신라면의 후광을 업고 탄생한 신라면 블랙이 출시 4개월 만에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 이유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농심은 생산 중단의 직접적 이유로 수익성 악화를 꼽았다. 스프와 밀가루 등 원자재 가격이 대부분 오른 가운데 가격 인하까지 단행했지만, 매출이 기대와 달리 계속 감소하자 적자를 보면서 생산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이유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데 있다. 소비자들은 처음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신라면 블랙을 사먹었지만 이후부터는 카트에 담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먹거리를 고를 때 '1위 업체'라는 배경과 '광고'는 그저 참고만 할 뿐이다.

결국 신라면 블랙은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과 정서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해 실패한 것이다. 설렁탕 한 그릇을 담았다는 광고 문구의 적절성은 차치하고라도 일반 라면의 2배 값을 치르면서 신라면 블랙을 사먹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소비자들의 행태를 식품업계는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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