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프랑스의 트리플A 신용등급을 강등하며 대선이 100일 남짓 남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13일(현지시간) S&P는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한 단계 하향조정하는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9개국의 신용등급을 무더기 강등했다.
이날 프랑스 정부는 S&P가 공표하기 전 신용등급 하향조정 사실을 발표했다. 영향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프랑스와 바루앵 재무장관 13일 TV에 출연해 "등급강등은 재앙이 아니"라며 "프랑스 정치를 규정하는 것은 신용평가사가 아니"라며 등급 강등의 의미를 축소시키려는 발언을 남겼다.
그러나 프랑스가 그렇게나 '애지중지' 하던 트리플 A 등급을 상실하며 4월 말 예정된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가 자신을 유럽 국가 부채 위기에서 프랑스를 지켜 온 수호자 이미지를 부각시켜 왔다는 점에서 이번 등급 강등에 따른 타격이 더 커질 수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연금개혁과 재정 감축 등 긴축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트리플A를 유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마시밀라노 그로스만 파리정치대학(시앙스 포) 정치학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가 매우 위험한 영역으로 진입했다"며 "그는 트리플A를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들고 나왔는데 이제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날 등급 강등 소식과 함께 사르코지를 향한 비판이 모든 정당으로 부터 쏟아졌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는 "사르코지를 보호하던 신화가 끝났다"고 말했으며, 극좌 정당의 대선후보인 장-뤽 믈랑숑도 등급 강등이 "대통령과 정부에게 끔찍한 실패"라고 말했다.
사르코지와 이번 대선에서 경합을 양강구도를 펼치고 있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도 최근 인터뷰에서 트리플 A 상실이 연쇄효과를 일으킬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올랑드 대표는 "트리플 A 상실은 현 정부에게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라며 "현 정부는 트리플 A를 마치 국보처럼 여거 왔고, 이 보물을 잃어버린 그들은 칭찬 받을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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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르코지 재임 기간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상황이 악화됐다는 점은 사르코지이 '약점'이다. 프랑스의 총 부채는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7년 후 40% 증가한 1조7000억유로로 늘어났다. 국가 부채 이자부담은 올해 정부 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예정이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트리플 A 국가들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럽위원회(EC)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7.1%다. EC는 2013년까지 트리플 A 국가 중 가장 열악한 재정 수지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내년 92%까지 상승하리란 전망이다.
당장 신용등급 하락으로 프랑스 국채 금리 상승이 예상된다. 13일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전일대비 3.5bp 상승한 3.075%를 기록했다. 프랑스 10년 물 금리는 지난해 4분기에만 55bp 급등했다.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은행 자금 조달에 부담을 고조키시키고, 미국 머니마켓펀드들이 유럽 익스포저를 더 줄이게 만든다. 자금 조달 압력은 프랑스 은행들의 가계 및 기업 대출을 줄이게 만든다.
경제적 펀더멘털도 취약해졌다. 프랑스의 무역수지 역시 독일에 비해 약화된 위상을 드러낸다. 프랑스는 2002년 후 무역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으며 2007년 이후 무역적자가 400억 유로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말 프랑스의 무역적자는 700억유로로 불어났다.
유로존 위기가 실물경제 타격으로 이어지며 프랑스 경제성장률 역시 암울한 전망 가운데 놓여있다. 프랑스 통계청은 프랑스가 올해 2분기까지 2분기 연속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현재 프랑스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대통령과 올랑드 사회당 후보가 양자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르펜이 이들을 추격하고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CSA가 집계해 13일 오전 방송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차 대선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올랑드 대표는 29%의 지지율로 26%의 지지율을 기록한 사르코지를 앞섰다. 르펜이 19%로 그 뒤를 이었다. 가장 높은 득표율을 가진 2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결선투표 여론조사에서는 올랑드 대표의 지지율이 57%로 사르코지를 앞섰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등급 강등 소식이 발표되기 이전 집계된 것으로 이후 결과는 사르코지의 지지율 추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프랑스 1차 대선은 4월 22일에 실시되며,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득표수가 많은 두 후보를 상대로 5월 6일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사르코지 정부는 등급강등 가능성이 가시화 되던 지난해 말부터 등급 강등에 앞서 포석을 깔기 시작했다.
프랑수아 필롱 프랑스 총리는 지난해 10월 트리플 A 등급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는 매우 귀중한 자산'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신용등급강등설이 돌기 시작한 11월 사르코지는 트리플 A 등급 상실이 '대수가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달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트리플 A 상실이 어려움을 더하긴 하겠지만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5월 6일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던 간에 긴축정책을 강화해 재정적자와 국가 부채를 줄여야 하는 부담은 피할 수 없다. 사르코지는 올해 5.7%로 예상되는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2013년3% 밑으로 줄인 후 2016년 재정수지 균형을 맞추겠다고 밝혀 왔다.
올랑드 대표는 "경제성장이 없다면 2013년까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긴축 고삐를 더 느슨하게 죄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재정수지 균형 시점도 사르코지 보다 1년 늦은 2017년으로 제시했다.
최근 몇 주 간 사르코지 대통령 역시 여론을 의식해 추가 긴축 채택을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성장률을 저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몇몇 정부 관계자들도 재정적자 목표 달성을 위한 추가 재정 삭감이나 증세가 없을 것이라 밝혔다.
바루앵 재무장관도 13일 S&P의 등급 강등을 확인한 후 TV 연설에서 "새로운 긴축 조치는 없다"며 "(현재의 위기는) 긴축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