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송합니다. 수술 때문에…"
한 신경외과 교수를 인터뷰할 때다. 그 교수는 수술이 늦어져 약속장소에 30분 늦게 나타났다. 게다가 이미 다른 수술이 예정돼 있어 1시간하기로 했던 인터뷰를 30분 만에 끝내야 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부랴부랴 수술장으로 향하던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손이 이래서…"라면서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노(老)교수의 손은 수술약에 절어 샛노랗게 변해 있었고 거칠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수술을 했는지 손이 말해주고 있었다. 약속을 못 지켰던 그에 대한 원망은 이내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의사를 만나면 손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환자를 위해 수술만 하며 살아온 그 교수의 손을 보며 느낀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일게다.
최근 포괄수가제를 취재하다가 한 산부인과 교수를 만났다. 포괄수가제는 특정 질병에 통으로 가격을 매기는 지불제도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의사의 행위별로 가격을 매기는 행위별수가제를 기본으로 해 왔다.
포괄수가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환자의 비용부담은 낮아지는 대신 의사들의 수입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교수는 "행위별수가제가 없어지면 병원들이 수준 높은 진료를 하지 않게 되며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편함이 느껴졌다. 수술을 자주한다는데도 그의 손은 하얗고 매끈했다. 노교수의 거친 손이 자꾸만 오버랩 됐다.
정부의 새로운 보건 정책이 의사들의 '기득권'과 부딪힐 때면 의사들은 항상 '환자를 위해서'라는 말을 앞세운다. "이번 정책으로 의사들이 진료를 제대로 못하면 결국 환자가 피해보니까"하는 식이다.
그들의 주장에는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환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환자 안전'의 이면엔 '수익 문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의사협회의 수장이 새로 뽑혔다. 취임 인사를 통해 노환규 신임 의협회장은 "정부정책에 단호하게 NO를 말하는 협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NO 하겠다' 외친 의협 수장의 기백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 정책에서 '환자'가 소외되고 의사들의 이익만 우선되는 일은 없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의료가 돈이 되고 산업이 되는 시대지만 의술이 여전히 사람을 살리는 인술(仁術)임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