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투자노트]
미국에 와서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흑인 엄마에 관한 한 재미교포 택시 운전사의 경험담이다.
그 분은 미국에 이민 온지 20년이 넘어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다. 초기에 이민 와 장사를 시작한 덕에 돈을 꽤 많이 벌었고 자녀들도 성공적으로 잘 키워 독립시켰다.
지금 택시 운전을 하는 이유는 2년 전 아이들도 다 컸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자며 하던 장사를 정리한 탓이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자녀의 문제로 하루 이틀 귀국절차를 미루다 보니 어느덧 2년의 세월이 흘러 버렸다.
미국 뉴저지주 꽤 좋은 동네에 집이 2채 있지만 하나는 딸에게 주고 하나는 부부가 사는 처지라 임대료를 기대할 수도 없고 생활비나 벌자며 시작한 일이 택시 운전이었다.
나는 물었다. "20년이나 미국에서 정 붙이고 사셨는데 왜 한국에 돌아가려 하셨어요?" 그 분은 "미국에서 장사하면서 못 볼 거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래요"라며 자신의 경험 하나를 전했다.
"처음에는 여기 흑인과 히스패닉을 상대로 장사를 했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잡화점을 하는데 잠시 한눈만 팔면 물건들이 없어지니 화장실도 못 가요. 한 날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아직도 안 잊혀요. 7살쯤 되어 보이는 흑인 여자아이가 가게에서 과자를 한 개도 아니고 몇 개씩 옷 속에 집어넣어 숨겨요. 너무 어려서 야단치기도 뭐하고 조용히 타일러 보냈죠. 그런데 매장 유리문으로 보니까 그 엄마가 아이를 사정없이 꼬집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 다가가서 봤더니 엄마가 그 아이에게 '바보 같이 그것 하나도 못 훔치냐'고 야단을 칩디다. 엄마가 자기 자식에게 그리 가르치는 걸 보니 오만 정이 다 떨어지더군요."
흑인이라서 자녀에게 옳지 못한 일을 가르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 때문에 옳지 못한 상황에 처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종의 누구라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인격을 잃어버릴 수 있다. 7살 딸이 훔쳐 나올 과자 몇 봉지는 그 가정의 저녁식사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녀가 훗날 어떤 일을 하든 경제적으로 넉넉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자녀의 경제적 미래를 결정짓는 일차적인 요인은 부모와 가정환경이라는 사실은 자주 잊어버린다. 미래의 경제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 중 하나가 교육 수준인 것은 사실이지만 자녀의 교육 수준조차 부모와 가정환경이 결정짓는다.
수전 메이어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란 책에 보면 "부모의 교육 연수가 늘어날수록 자녀의 성과도 나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부모의 교육 수준, 특히 어머니의 교육 수준이 자녀의 교육성과, 즉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진학 등과 분명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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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교육 수준과 가정환경이 자녀의 경제적 미래에 일반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부모가 자녀에게 역할모델이 되고 자라온 가정환경이 자녀가 꿈꾸는 미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중요한 것은 부모의 교육 수준과 가정환경이라기보다 자녀에게 어떤 역할모델이 되고 어떤 기준, 다시 말해 어떤 눈높이를 제시해줄 것인가이다.
루비 페인이 지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책을 보면 사람들이 빈곤층에서 벗어나게 되는 4가지 요인은 너무 괴로워 견디기 어렵거나 목표와 비전이 생기거나 이끌어줄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재능 또는 기술을 얻는 것이다. 이 가운데 목표와 비전을 만들어주고 자녀를 이끌어주는 것은 어떤 부모라도 스스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유는 부모에게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싶지만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보면 가난이 상속되는 가장 큰 원인은 재정적 빈곤이 아니라 가정 내의 정서적 빈곤과 지적 자원의 결핍, 좋은 역할모델의 부재 때문이었다.
자녀가 나보다 더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함께 배우고 근면하고 성실하고 도덕적인 삶의 모범을 보이면 된다.
가난은 결국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돈은 가난한 가정의 수많은 결핍 중 극히 일부일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의 메이어도 "아이가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가족들이 도와주는 데 돈이 얼마나 중요한가?"라고 반문한 뒤 돈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