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졸업과 함께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쟁의 세계에 뛰어든다. 취업, 승진, 창업까지 경쟁을 피하기 어렵다. 영화·음악 같은 문화예술, 스포츠 세계에서도 선의의 경쟁은 있다. 경쟁은 조직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삼성, LG, SK하이닉스, 현대차 같은 기업들이 세계 무대에서 버텨온 이유는 경쟁의 압력을 혁신의 동력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교육의 장에서는 경쟁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시선이 있다. 교육을 해치는 악(惡)이라고 규정하고, 경쟁을 없애거나 줄이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선(善)인 것처럼 말한다.
한국 교육에서 경쟁이 문제로 비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 높은 등급을 받으려면 친구를 제쳐야 하고, 옆자리 친구는 협력과 공존의 파트너가 아니라 '이겨야 할 대상'이 된다. 학생 개개인의 강점과 잠재력을 살피기보다 총점으로 한 줄을 세우고, 1점 차이로도 '패자'를 만드는 게 대입 제도다. 이런 환경에서 경쟁은 학생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고 교육 생태계를 삭막하게 만드는 나쁜 시스템이 된다.
그렇다면, 경쟁을 교육에서 밀어내는 것이 답인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겉으로는 학생을 위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졸업 후 마주할 현실을 생각하면 학생들이 미래 삶을 준비할 기회를 빼앗는 일이 될 수 있다. 미래 세대가 경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건강하고 생산적인 정치, 역동적인 경제, 진취적인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
경쟁의 의미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경쟁을 뜻하는 단어 competition의 라틴어 어원 'competere'는 '함께'라는 뜻의 'com'과 '향해 나아가다'는 의미의 'petere'가 결합된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경쟁은 누군가를 꺾는 행위로만 이해하기보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과정으로 해석돼야 한다. 공정한 규칙 아래서 이뤄지는 경쟁은 서열을 가르는 도구가 아니라 동기를 만들고 한계에 도전하게 하며 함께 성장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각자 닥은 실력을 펼치는 장이 된다.
우리는 이를 스포츠 무대에서 보곤 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미국 클로이 킴 선수는 대한민국 최가온 선수에게 뒤진 뒤 새 챔피언에게 먼저 다가가 축하를 건넸다. 승자를 존중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쇼트트랙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한국 팀 간판이었던 최민정 선수는 후배 김길리 선수보다 늦게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만족해했고 후배의 선전을 축하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대학에서도 경쟁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각종 공모전에 참여해 경쟁하고, 떨어지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실력을 쌓는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나'가 아니다. 승자를 축하하는 법, 패자를 위로하고 다시 일어서게 돕는 법,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배운다. 경쟁을 없애는 교육은 이런 배움의 기회도 함께 지워버릴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본질을 분명히 해야 한다. 경쟁, 그 자체가 문제인가. 학생들이 경쟁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정한 규칙 아래서 제대로 경쟁하는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환경이 문제인가.
독자들의 PICK!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일은 감정적인 정조(情操)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에 휘둘려 설계한 교육 제도가 학생들이 더 성숙할 기회, 미래를 준비할 기회를 앗아간다면 무슨 소용인가. 경쟁을 없애는 것이 곧 교육의 진보는 아닐 것이다. 학생회장 선거부터 공모전까지 품격 있게 겨루고 함께 성장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교육의 모습 아닌가. 진정한 교육은 공정한 경쟁 규칙을 함께 설계하고, 그 규칙 아래서 각자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며, 최선을 다한 뒤 결과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체험하게 하는 데 있다. 물론 패자부활의 기회도 열려있어야 한다. 교실과 캠퍼스가 그런 무대가 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