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저리가라"…시장의 반란

"대형마트 저리가라"…시장의 반란

이정흔 기자
2012.11.05 10:38

[머니위크]체질 바꾼 전통시장 가보니

#1. 지난 10월24일 서울 종로의 통인시장. 점심시간 무렵이면 이곳엔 사람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계란찜 맛있겠다", "아주머니 넉넉하게 좀 담아주세요"…. 시장을 누비며 상인들과 먹거리 흥정을 벌이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위치한 '도시락카페 통'의 손님들. 지난 2월 오픈한 이곳은 벌써 통인시장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요즘엔 경복궁 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도시락카페는 한번쯤 들러 보고 싶은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대형마트에 치이고 고객들에게 외면 받기만 하던 전통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등 돌린 고객들의 발걸음을 다시금 붙잡기 위해 상인들이 나서 변화를 추구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예전처럼 지붕 하나 씌우는 등의 겉모양만 바꾸는 변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통인시장처럼 색다른 서비스로 '우리 시장만의 색깔'을 강조하는 곳이 늘고 있다. 대형마트에 대응하기 위해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전통시장이 다시 소비자들과 통하고 있다.

◆늙은 이미지 깬다…'청년장사꾼'들 시장에 활력

나이 지긋한 상인이 빈 가게를 홀로 지키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 전통시장이라고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전주 남부시장은 이 같은 전통시장의 구태를 완전히 버렸다. '젊은 활기'를 불어넣으며 대표적인 우수 전통시장 사례로 손꼽힌다.

비결은 '청년장사꾼' 프로젝트. 20~30대 젊은 사장들을 불러 모아 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난해 6월과 7월 '청년장사꾼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8월에는 15일간 '청년야시장'을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 9월과 10월에도 개최한 야시장은 다양한 문화공연과 어우러지며 색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50여명의 청년 장사꾼이 30여개의 점포를 열어 늦은 시간까지 가게 불을 밝힌 덕에, 젊은 사람들에게 '한번쯤 놀러 가기 좋은 시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최근에는 행사기간이 아니어도 젊은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몇몇 가게는 입소문을 타며 시장에 상당수의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톡톡히 해내는 중이다.

이 같은 젊은 사장들의 패기 덕분에 실제 매출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해와 비교해 평균 상인들의 매출이 20%가량 상승한 것. 이곳을 찾는 주말 관광객만 하더라도 최대 1500여명에 이른다.

◆'특화거리' 조성…원조의 맛, 삼겹살 골목

충북 청주 상당구에 위치한 서문시장은 특화거리 조성을 통해 50년 전통의 옛 명성을 되찾는데 성공했다.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제품은 바로 삼겹살.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에 자리잡은 10여개의 삼겹살 전문식당이 시장 입구부터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서문시장상인회는 지난 3월 청주시와 손을 잡고 서문시장 내에 '삼겹살 거리'를 조성했다. 청주가 오래 전부터 삼겹살의 고장으로 유명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삼겹살의 원조답게 제공하는 메뉴도 특별하다. 삼겹살을 간장에 담갔다가 굽는 '간장구이', 왕소금을 뿌린 삼겹살을 연탄불에서 구워먹는 '소금구이' 등 이곳에 오면 값싸고 다양한 삼겹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삼겹살거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서문시장 내 다른 상가에도 점차 온기가 돌고 있다. 삼겹살 특화거리를 홍보하는 작업과 함께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시장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한 것이 큰 몫을 했다. 할인 축제, 스토리텔링 공모전 등 소비자 대상의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한편 무료 주차장 운영, 상인 대상 마케팅 교육 등 내실 다지기에도 집중하고 있다.

서문시장 삼겹살거리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춘천 닭갈비 골목처럼 서문시장이 삼겹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소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맛, 품질, 서비스 체계를 완벽하게 구축해 나갈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워킹맘' 주목…집까지 안전 배송

고객이 전통시장으로부터 발걸음을 돌린 요인을 꼼꼼히 분석해 개선하면서 다시금 주목받는 곳도 있다. 인천광역시의 서구 중앙시장, 동구 현대·송현시장, 남구 토지금고·용현시장, 남동구 모래내시장 등 전통시장 6곳에서 운영 중인 공동배송센터를 눈여겨볼 만하다.

공동배송센터는 소비자들이 구매한 물품을 1~2시간 간격으로 무료 배달해주는 전통시장 내 서비스센터다.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는 초기에는 상인들이 일정금액의 운송비를 부담해야 하는 등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올해 초 인천광역시가 지원을 시작하면서 소비자들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상인들의 부담이 줄고 시설이 개선되면서 센터가 활기를 되찾았고, 자연스레 시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이용률도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상인들의 만족도가 높다. 공동배송지원센터가 활성화된 최근 서너달 사이,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2~3배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간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량구매 소비자도 큰 폭으로 상승 중이다.

◆원스톱 서비스까지…채소 파는 정육점

대형마트 쇼핑의 가장 큰 장점은 한곳에서 다양한 물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시장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시장의 변화에 적용했다.

고기를 썰고 있는 점원의 옆쪽으로, 다른 점원은 잘 포장된 채소를 소비자에게 건네는 풍경. 이른바 '채소 파는 정육점'이 대표적이다. 고기를 사러 온 손님들은 대부분 쌈거리 야채도 산다는 점에서 정육점 사장 이기관씨(43)가 내놓은 아이디어다. 이 같은 영업전략은 적중했다. 고기와 더불어 품질 좋은 채소를 판매한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매출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육점 한곳에서 시작된 변화는 수유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시장 내 유명점포를 이용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수유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도 증가했다. 점포 운영의 우수사례를 본 주변 점포 상인들 역시 저마다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시도하고 있다. 상인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석연 시장경영진흥원장은 "최근에도 전통시장 사진 박람회와 우수전통시장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이 같은 시장의 변화를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며 "기존의 획일적인 개선에서 탈피해 전통시장이 각각의 개성을 발휘하며 소비자에게 다가가자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53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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