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의 진정한 한국화 위한 제언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의 진정한 한국화 위한 제언

정리=장경석 기자
2013.04.30 10:26

[기고]최태훈 한국·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 사무총장

최태훈 한국·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 사무총장.
최태훈 한국·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 사무총장.

새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창조경제를 주창하면서 창조경제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이스라엘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사실 이스라엘은 국내총생산(GDP)으로 치면 한국의 5분의 1, 통상 규모로 치면 9분의 1인 나라다. 또 한국과의 교역도 2011년 한국 기준으로 수출 18억2000만달러, 수입 6억8000만달러 정도에 불과해 한국 총 교역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서 이스라엘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창조경제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혁신적 기술 중심 창업 유도 및 기업 육성을 통한 양질의 고용 창출’이라는 국가적 과업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선도적인 전례를 실현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기술 중심적인 창업 및 벤처 활성화에 관한 중요한 성공 요인은 정부가 지원하는 트누파(Tnufa)나 TI(Technology Incubator) 등의 창업 및 기업육성 시스템, 요즈마 펀드로 대변되는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벤처캐피탈,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다양한 분야의 인적 자원, 역사적 특수성이 반영된 글로벌 유대인 네트워킹, 기술 거래 및 인수합병(M&A)에 필수적인 기술 가치 평가 및 지적 재산권 관리 시스템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정부 시스템, 벤처캐피탈, 인적 자원에 관해서는 최근 많은 기사와 자료를 통해 비교적 대중에 잘 알려져 있지만, 결코 이들보다 경시해선 안 될 유대인 네트워킹에 관해서는 그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몇 가지 중의 하나가 탈무드일 것이며 탈무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이웃이다. 이웃에 관한 탈무드의 명언 가운데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란 말이 있다.

국가가 없이 2000여년을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유대인들이 그 뿌리를 잃지 않고 아직도 한 민족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근간에 이미 인적 네트워킹이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유대인들의 이런 강한 네트워킹은 국가의 재건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제활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은 560만명으로 미국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미국 전체 소득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30대 기업 중 12개가 유대인이 설립했거나 경영하고 있다. 60개의 이스라엘 기업이 외국기업으로서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 대학의 기술 사업화 현황에서도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대학 가운데 하나인 히브류대학은 이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로부터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매출이 발생한다고 한다. 대학별 연구 투자액 대비 성과 측면에서 보면 더욱 굉장하다.

히브류대학의 2007년도 총 연구 예산 대비 기술 사업화 성과는 MIT나 스탠포드대학에 비해 9배 이상 높다.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해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상무관에게 물어봤더니 그 이유의 첫 번째로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스라엘의 대학은 거의 대부분 대학 내 기술 사업화를 위한 기술지주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기술지주회사가 네트워킹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네트워킹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대학 내 교수 등 개발자와의 네트워킹이다. 대학의 연구자들은 기술지주회사 덕분에 연구에만 몰두하더라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산업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확보할 수 있다. 또 기술지주회사의 담당자는 연구 내용에 관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마케팅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외국기업의 기술 수요가 있을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최적의 연구자를 매칭 시킬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네트워킹은 기술의 판로에 대한 네트워킹이다. 지리적인 범위로 보면 이스라엘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또 기술 공급체인 측면에서 보면 기술 수요기업과 M&A 가능기업의 관련자뿐만 아니라 벤처 투자 기업 관련자를 망라하는 네트워킹일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킹에 있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강력하게 연계돼 있는 유대인의 연대 의식은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 동안의 민족은 있되 국가는 없는 역경과 고난의 역사로 인해 자국보다는 해외에 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는 비운의 현실이 이스라엘의 국가적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우연의 산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질곡의 민족사 속에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해 온 유대인의 민족성과 연대 의식의 특별함을 인정할 때에만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 정부에 외교부와는 별도로 재외 유대인 관리를 전담하는 부처(Ministry of Public Diplomacy and Diaspora Affairs)가 운영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글로벌 유대인 네트워킹을 활용해 충분한 전문지식과 원활한 소통능력을 갖춘 노련한 인력을 기술지주회사의 매니저로 배치함으로써 기술지주회사가 기술 사업화 과정에서 네트워킹 허브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원천 핵심기술의 사업화라는 본질적인 기능을 능동적이고 개방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이스라엘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오프라인과 구전을 통한 전통적 네트워킹 방식에도 의존하겠지만, 국내외 사안별 적임자들에 관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DB)화된 최적의 네트워킹 체계를 구축해 뒀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기술집약적 창업 및 벤처기업 활성화 사례를 성공적으로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창업 지원 정책 체계나 벤처캐피탈의 구성과 같은 외형적인 시스템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스템과 자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고 단기간에 국내로 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적 실효성도 조기에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창업과 벤처기업을 위한 장을 제공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밭을 일구어도 좋은 씨앗과 거름이 있어야 충분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인적 자원과 네트워킹 역량이며 이스라엘 국민의 오랜 역사와 전통, 문화에 기인한 유?무형의 민족적 자산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모방으로는 무의미해 중장기적으로 한국화하기 위한 노력과 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인적 교류 촉진을 통한 저변의 확대가 절실하다. 특히 창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우수한 과학기술자와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예비 사업자의 양성과 교류가 필요하다. 또한 기술의 적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인력의 양성과 교류가 절실하다. 기술 가치 평가는 우수 창업 기업의 선별과 투자 자본의 성공적인 자본회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같은 인적 교류는 전문 인력 양성뿐만 아니라 양국을 이해하는 인적 자원을 확보해 줌으로써 실질적인 벤처 생태계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벤처 생태계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면에서 양국 공동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일례로 양국 간 합작 벤처 창업을 활성화하고 합작 벤처 기업의 연구 개발을 위한 필요 예산의 일부를 양국 공동 기금으로 지원해 주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은 양국 공동 프로그램은 한국의 기업가와 연구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창업 및 기업가 정신을 비교적 빠른 시간에 경험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라도 이스라엘의 글로벌 네트워킹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은 인건비가 매우 비싸고 내수시장이 작기 때문에 제조 산업이 빈약하다. 따라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한국과의 합작 벤처 기업 활성화는 이스라엘의 아이디어를 산업화하기 위한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필자가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는 한국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의 경우 2001년 창립돼 매년 양국 정부로부터 동일한 금액의 기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 12년간 접수된 총 217개의 양국 기업 공동 연구 개발 과제에 대해 기업 역량, 시장성, 협업성 등을 평가해 123개의 과제를 승인하고 지원해 왔다. 이 가운데 74개가 성공적으로 과제를 종료했고 22개의 과제는 실제 매출을 발생시켜 사업화에 성공했다. 일반적인 연구과제사업보다 사업화 성공률이 높다는 점도 중요하겠지만, 양국 간 협력과 인력 및 정보의 교류 확대에 기여한 점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아무쪼록 이스라엘의 벤처 생태계에 대한 벤치마킹, 그리고 양국 간 협력 프로그램 수행을 통해 국내 벤처 생태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스라엘과 한국의 유사성과 차별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전제된 한국적 전략 수립이 반드시 선행돼야 함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 그것이 현 정부에서 바라는 진정한 창조경제의 구현과 일회성 창조가 아닌 지속적 창조를 위한 산업 경제 구축의 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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