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이 땅의 '라면 상무'들에게

[우리가 보는 세상]이 땅의 '라면 상무'들에게

양영권 기자
2013.05.06 05:05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대전의 처가에 맡겨 둔 딸을 보러 어머니가 시골에서 올라오신 날이었다. 몇 시간 손주를 안아보고 다시 내려가시는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나도 역으로 함께 나갔다.

환송을 위해 기차에 올라타는 것은 금지된다. 하지만 어머니가 앉는 것만 보고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나도 KTX 기차간에 올랐다. 인사를 마치고 기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문이 닫히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기차를 타고 다음 역까지는 가야 했다.

나는 표를 끊고 정당하게 올라온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무임승차였다. 운임의 30배까지 물어야 한다는 경고문이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객차 저 쪽 끝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승무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통로에 있는 나에게 금방이라도 표를 보자고 할 것만 같았다. 짧은 시간 고민 끝에, 무임승차를 고백하고 선처를 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승무원이 다가왔을 때, 불쌍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꺼냈다. "어머니가 장애를 갖고 있어서 자리에 앉혀드리고 바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올라왔는데, 어떡하죠?"

어머니가 한쪽 눈에 장애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차를 타고 내리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상황을 과장한 것이다. 원칙대로 무임승차를 했으니 부가금을 내야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던 터였다.

"어머!" 그 때 승무원의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승무원은 "그럼 어머니가 내리실 때는 어떡하시나요. 혼자 내리실 수 있으세요? 아니면 도착역에서 저희가 와서 봐드릴까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좌석에 앉아 있는 어머니를 살폈다. 진심으로 어머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무임승차 부가금만 걱정하고 있던 내가 부끄러웠다. 승무원은 내가 다음 역에서 내려 몇 분 뒤 정차하는 반대 방향 열차를 타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한 뒤 가던 길을 갔다.

최근 대한항공 항공기 객실에서 벌어진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승무원 폭행, 이른바 '라면 상무' 사건은 포스코 관계자도 밝혔듯 '갑'의 위치에 익숙한 사회 고위층의 일탈행위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콜센터 상담원, 호텔 도어맨 등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이 사회문제화한 것은 우리 사회에 '라면 상무'가 한 두 명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서비스 제공자들의 웃음과 호의는 상품처럼 규격화됐다고 생각할 뿐 내가 겪은 코레일 승무원의 경우처럼 '매뉴얼'과 '규정'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적 배려'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존중을 받아야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지고 서비스의 수준도 향상되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이득이다.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앉거나 상담 전화를 받을 때 가격이 매겨진 상품으로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게 아니라 개개의 역사가 있는 인간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양영권 기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