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6월18일(10:30)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며칠 전 벤처기업 대표 K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 업계 돌아가는 이야기는 물론 사소한 가십거리를 주고받을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라 별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음성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고 다급함도 묻어 났다.
용건은 세무서 직원 2명이 느닷없이 사무실에 들이닥쳤다는 것. 세무서 직원들은 이틀 동안 K씨 개인과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할 터이니 성실히 응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친분 있는 세무사와 회계사로부터 억대 세금을 추징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K씨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30분 가까이 되는 통화 내내 K씨는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개인적 원한을 가진 누군가가 국세청에 제보를 했고 세무조사 대상으로 '찍혔다'고 그는 확신했다. 말로만 '창조경제'를 외치고 뒤에서는 벤처기업에게 족쇄를 채워서 되겠냐며 울분을 토했다.
K씨의 회사는 설립한지 몇 년 되지도 않은 데다 매출액이라고 해봐야 1년에 10억 원 남짓하다. 직원들 월급 주고 사무실 임대료 내면 빠듯한 살림살이다. 그런 회사가 억대 세금을 두들겨 맞을 지경이라니. 이유가 궁금했다. 대놓고 물어보기엔 껄끄러웠지만 사실관계는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두 가지. 우선 최근 수주한 용역개발에 대한 세금계산서를 누락했다는 점이었다. 개인에 대한 세무조사는 K씨가 회사로부터 받은 '대표이사 가지급금'이 빌미로 작용했다. 작은 회사라 회계처리가 미비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세무 당국이 양해를 해줄지는 의문이었다.
무일푼이던 K씨에게 법인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은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 돈이었다. 결국 지인에게 돈을 융통해 자본금을 납입한 뒤 다시 갚는 방법을 택했다. 법인 등기 기록의 잉크가 마르자마자 자본금을 다시 빼낼수 밖에 없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세금계산서를 누락한 사연도 구구절절했다. 급한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본업과 별 상관없는 개발 프로젝트를 수주한 게 발단이었다. 개발 과정에서 발주처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납기가 늦어지고 대금 납부도 미뤄졌다. 세금계산서 신고에 대한 지식이 없던터라 어영부영 넘겨 문제가 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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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는 K씨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잘못은 잘못이었다. 대표이사 가지급금 해소를 위해 가짜 세금계산서를 만든 뒤 매출채권으로 처리한 사례를 본 적 있어 그의 말을 100% 믿어도 될지 의문이었다. 여차하면 세무 당국이 가장납입이나 횡령, 탈세 혐의를 씌울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K씨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고 성실한 기업인이라는 점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본인 일도 벅찬데 후배 기업가에게 멘토링을 해줄 수 있는 자리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들이 '불가피한 의사결정'으로 포장돼 후배들에게 전달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자신을 타산지석 삼아 정도를 지키길 당부하는 선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