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세력, 과거 SK와 KT&G 공격 사례..배만 불리고 먹튀, 상법개정시 심화 우려
#2003년 크리스마스이브. SK그룹을 무섭게 공격하던 헤지펀드인 소버린자산운용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더니 보유하고 있던 지분 14.99%를 관계회사인 4개 펀드에 3%씩(총 12.03%) 나눠 분산했다.
이를 지켜본 당시 언론보도의 제목은 '소버린, SK(주) 12% 돌연매도'였고, 이에 대한 해석으로 '소버린이 M&A 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해 지분 처분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버린의 이 같은 전략이 두번째 공격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으로 밝혀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4년 3월 12일 주주총회에서 소버린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우선 요구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는 적은 지분으로도 표를 몰아서 사용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 이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건에서도 표대결이 이뤄졌다.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건은 대주주의 의결권 3% 초과분이 제한돼 SK 측은 보유지분(계열사 포함 9.42%)보다 6.42% 적은 의결권을 행사했다.
반면 2003년말 은밀히 지분을 쪼갰던 소버린은 대주주에 적용되는 합계 3% 룰을 벗어나, 개별 3%씩 6개 자회사 펀드에 분산했던 지분 15.01%의 의결권을 그대로 행사했다. 국민연금 등 우호세력이 없었다면, 또 집중투표제가 도입됐다면 소버린의 지분 쪼개기 '꼼수'는 성공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M&A를 포기하고 지분을 3% 씩 쪼갠 것이 아니라 상법상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 선임시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의 지분의 합계가 3%로 제한되고, 일반주주는 각각 지분율 3%를 적용받는다는 점을 이용한 '지분 쪼개기' 전략이었던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
소버린은 경영투명성 제고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워 SK에 압박을 가하다가 2년 후인 2005년 7월경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배당과 시세차익 약 1조원(9459억원)을 챙겨 유유히 한국을 떠났다.
#2006년 3월 17일. 대전시 KT&G인력개발원 대강당에서 진행된 정기주주총회에서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이 주도한 아이칸 연합이 추천한 스틸파트너스의 워렌 지 리크텐스타인 대표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KT&G에 정부 측이나 회사 측의 인사가 아닌 외국계 헤지펀드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선임되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리크텐스타인 대표는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10개월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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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아이칸 연합이 2005년 9월부터 KT&G의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해 6.6%를 확보한 후 이를 3개의 펀드에 분산해 주총에서 집중투표제와 '3%'룰을 활용해 사외이사를 자신들의 편을 세운 후 경영진을 압박했다. 지분 인수 후 1년 3개월만인 2006년 12월에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하고 시세차익 약 1500억원을 챙겨 떠났다.
아이칸 연합이 공격하는 동안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2조 8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투기세력 날게 달아주는 개정 우려=현재 법무부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상법의 취지는 이사회의 투명성을 높여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자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이와 함께 대주주들의 전횡을 감시하는 역할을 감사에게 맡기겠다는 얘기다.
과연 상법 개정안이 일반에서 생각하는 소액주주(일명 개미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일까. 또 이렇게 선임된 감사위원들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까.
소버린이나 칼 아이칸뿐만 아니라 타이거펀드, 헤르멘스 등 과거 국내에서 '먹튀논란'을 일으켰던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행태를 보면, 철저히 각 펀드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충실했던 점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지분 3%씩을 여러 자회사로 나눠 지분이 뭉쳐있는 국내 대주주와 달리 더 큰 의결권과 영향력 행사를 위해 열을 올렸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것이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별도 선임, 전자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를 통해 대주주를 압박한 후 시세차익을 올린 후 떠났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은 대주주의 경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 쪼개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분을 분산해놓은 헤지펀드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제도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의 경우 지분 3%면 600억원 규모로 헤지펀드들을 소액주주라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시세차익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해서 상법을 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우려했다.
◇경제민주화와는 또 다른 문제..상법 개정안=일각에서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경제민주화의 후퇴라며 비난하고 있다. 상법개정은 반대는 대주주의 전횡을 방치하겠다는 의미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감사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현 제도가 이 같은 취지를 살릴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법 하에서도 감사위원의 독립성 달성은 가능하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사외이사를 2/3 이상 두도록 하고, 1인은 회계 또는 재무전문가여야 한다는 조항(상법 제542조의 11)이 있고, 소액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반드시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토록 의무화한 조항(상법 542조의 8)도 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하지만, 최근 일부 재계 총수들이 잇따라 구속돼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대주주의 불법을 처벌할 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현재 있는 제도를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라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재계 관계자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를 과도하게 도입해 결국 투기적인 외국계 펀드나 경쟁사들이 국익이나 회사의 이익보다는 펀드의 이익에만 집중해 한국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