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집행임원 분리 논리와 배치..미국 이사회와 집행임원 사실상 한몸
"미국의 경우 이사회와 집행임원이 구분돼 있는 등 업무 집행기능과 감독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따라서 이사회 의장의 집행임원 겸직을 금지하도록 해 이사회는 업무 감독 기능에 전념하고, 집행임원의 선임을 의무화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법무부가 이사회와 집행임원을 분리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우리 상법에도 이같은 변화를 주겠다면서 밝힌 개정의 이유다.
자산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의 경우 업무 집행 및 감독 기능이 모두 이사회에 집 중돼 있어 '자기감독의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사회 의장과 CEO가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에서는 기업의 이사회를 책임지는 이사회 의장과 업무 집행을 하는 최고경영자인 CEO가 분리돼 운영되고 있을까. 머니투데이가 2013년 포천 500대 기업 중 상위 20개사를 분석할 결과는 이같은 주장과는 큰 차이가 난다.

◇포천 톱 20기업 67%..이사회 의장-CEO 겸직=포천 500대 기업 중 매출 상위 20대 기업의 이사회 의장과 CEO의 분리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67%인 13개사는 현재 이사회 의장과 최고경영자(CEO)가 동일한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기업은 매출 4692억달러(한화 약 516조)로 미국 최대 기업인 월마트에서부터 매출 20위인 IBM(1045억달러)까지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 톱 20으로 불리는 업체들이다.
월마트와 엑손모빌(4499억달러), 쉐브론(2339억달러), 필립스66(1696억달러), 버크셔 해서웨이(1625억달러), 애플(1565억달러), 제너럴모터스(GM, 1523억달러), 제너럴일렉트릭(GE, 1469억달러), 발레로에너지(1383억달러), 포드자동차(1343억달러) 등 10위권 기업 내에서는 전체의 70%가 이사회 의장과 CEO가 동일 인물이었다.
이사회 의장과 CEO를 겸직하는 회사는 엑손 모빌, 쉐브론, 필립스66, 버크셔해서웨이, GM, GE, 발레로에너지 등 7개사로 법무부에서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집행임원을 분리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내놓은 취지와는 상의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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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의장이 집행임원(CEO 등)을 겸직하지 않은 회사로는 월마트, 애플, 포드자동차 등 3곳으로 이 가운데 월마트와 포드는 창업자의 아들과 증손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집행임원을 선임하는 형태로 창업자 가문이 경영전반을 컨트롤하는 구조다.
펀드들이 최대주주인 애플만이 이사회 의장과 CEO가 오너 가문가 관련 없이 분리돼 있는 형태였다. 애플은 뱅가드그룹의 인덱스펀드가 1대주주이며, 피델리티의 콘트라펀드가 2대주주다.
재계 관계자는 "포천 500대 기업 중 톱 10기업은 사실상 이사회와 집행임원이 동일한 구조로 기업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집행력 등으로 전세계 톱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0위 아래로 내려가도 조사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11~20위 중에는 6개사가 이사회 의장과 CEO를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내 매출 11위인 AT&T를 시작으로 패니 메이, CVC 캐어마크, 맥케슨, HP, 버라이존, 유나이트드헬스 그룹, JP모간체이스 & Co, 칼디날헬스, IBM 등 20위권 이내 기업 중 6개 기업은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효율성 높은 지배구조가 최고=김정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회의 감시기능은 살리면서도 CEO의 강력한 업무추진력을 보장하려면 이사회와 집행임원이 함께 하는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기업의 효율성이다. 어떤 지배 구조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 창출에 가장 적합한가에 따라 기업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포천 톱 20개 기업을 분석해보더라도 전체의 70% 가량이 CEO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고, 나머지 30%도 각각의 사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사회와 집행기구를 구성하고 있다.
패니메이, CVC 캐어마크, HP, 유나이티드헬스그룹 등 이사회 의장과 집행 CEO를 분리하고 있었으나, 패니 메이는 공기업이고, CVC 캐어마크는 현재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토마스 리안 회장이 CEO를 겸직하다가 현 CEO인 래리 멜로에게 사장 자리만 물려준 형태다. 국내에서 개정이 추진되는 것처럼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것이 아닌 기업의 선택사항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 HP는 맥 휘트만이 CEO를 맡고 있고 랄프 위트워스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나, 전임 의장의 사퇴로 위트워스는 임시 의장을 맡고 있는 상황이며,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리차드 버크 이사회 의장은 이 회사의 퇴임 임원 출신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졌거나 100년을 넘긴 기업인 GE, GM, AT&T, JP모간 체이스, IBM 등 미국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상법 개정안에서 분리하려는 이사회 의장과 기업 CEO를 겸직하고 있었다.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집행임원제를 도입하지 않은 캐논이나 도요타와 이를 도입한 소니의 실적 차이는 크다. 의사결정의 신속성 등 기업의 생명과도 같은 집행과정에서 이사회의 감독기능뿐만 아니라 지원 기능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전자기업이 삼성전자나 LG전자, SK하이닉스에 밀려 파산하고, 외국에 매각되는 이유는 느린 의사결정 구조와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