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판 생산라인 증설 지원에 배전반·변압기 등으로 장기계약 확산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던 장기공급계약(LTA)이 반도체 부품을 넘어 전력 기기 등 전력 인프라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 AI(인공지능) 투자 확대에 따른 공급 부족과 빅테크 기업들의 물량 선점 경쟁이 맞물린 결과다. 장기공급계약이 AI 산업의 새로운 거래 표준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1,145,000원 ▼23,000 -1.97%)는 최근 미국 전기차 기업 A사와 1조원대 규모의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 장기공급계약을 맺었다. A사가 선수금을 지원하고 생산라인 증설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구조로 알려졌다.
삼성전기는 전날도 엔비디아와 전략적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맺고 AI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을 다년간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간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최소 3년 이상이 될 전망이다. 계약 규모는 2조6000억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삼성전기는 올해에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10건 이상의 FC-BGA,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
LG이노텍 역시 빅테크의 선수금을 바탕으로 FC-BGA 장기공급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조지태 LG이노텍 패키지솔루션사업부장 전무는 지난 6월 '미디어 테크 데이'에서 "FC-BGA 확장 투자를 위해 2개 고객사와 구체적으로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장기공급계약 확대는 AI 수요 급증으로 핵심 부품의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병목 현상을 최소화하려는 빅테크와 부품 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AI 반도체용 패키지 기판은 고객사별 요구 사양에 맞춰 생산되는 만큼 단기간에 공급을 확대하기 어려워서다. 빅테크는 설비투자를 지원해 장기 물량을 선점하고 부품업체는 안정적인 수요를 바탕으로 투자 부담을 낮추는 구조다.

장기공급계약은 반도체 부품을 넘어 전력 인프라 분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LS일렉트릭(LS ELECTRIC(161,400원 ▼4,700 -2.83%))은 지난 19일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사상 처음으로 1689억원 규모의 배전 솔루션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배전반은 납기가 상대적으로 짧아 장기계약이 일반적이지 않던 분야지만 AI 데이터센터 건설 확대로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안정적인 물량 확보가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건설 컨설팅 기업 라인사이트에 따르면 북미 배전반·개폐장치의 리드타임(주문부터 납품까지 걸리는 기간)은 30~40주로 통상보다 2~3배 길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무거운 배전반을 배가 아닌 비행기로 실어 보낼 정도로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HD현대일렉트릭(490,000원 ▼9,000 -1.8%)과 효성중공업(1,924,000원 ▼25,000 -1.28%), 가온전선(240,000원 ▼3,500 -1.44%)도 최근 장기공급계약을 체결하는 등 배전·전력기기, 변압기, 버스덕트 등 분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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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의 설비투자가 늘면서 장기공급계약 확대 추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메타는 최근 실적발표에서 올해 설비투자 전망치를 50억달러 상향 조정하고 내년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글로벌 9대 CSP(대형 클라우드서비스 사업자)의 내년 설비투자 규모가 1조5310억달러(약 2025조8192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CEO(최고경영자)도 지난 20일(현지시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초지능 컴퓨팅 자원 부족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초지능 구축의 제약은 칩보다 전력, 냉각, 인프라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 투자에서 핵심 부품 하나만 부족해도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장기공급계약을 통한 물량 선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