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날 살렸다" 죽을뻔한 미 자선사업가, 간 이식 수술받고 새 삶

"한국이 날 살렸다" 죽을뻔한 미 자선사업가, 간 이식 수술받고 새 삶

홍효진 기자
2026.10.2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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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증상에 폐에도 물이…간경화 소견까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17시간 수술 성공
"한국에서 얻은 새 생명…조국의 어려운 이들 더 돕겠다"

미국인 자선사업가 마르코씨와 딸 킴벌리씨가 귀국을 앞두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난 21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옥외정원에서 간이식·간담도외과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기원·문덕복 교수, 기증자인 딸 킴벌리 씨, 수혜자 마르코 씨, 이승규 석좌교수.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미국인 자선사업가 마르코씨와 딸 킴벌리씨가 귀국을 앞두고 건강한 모습으로 지난 21일 서울아산병원 신관 옥외정원에서 간이식·간담도외과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송기원·문덕복 교수, 기증자인 딸 킴벌리 씨, 수혜자 마르코 씨, 이승규 석좌교수.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제 조국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요. 한국에서 받은 간이식으로 계속 봉사할 기회를 얻어 정말 행복합니다."

조국 페루의 소외 계층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오던 중 간경화를 앓게 된 미국인 자선 사업가 마르코 안토니오 키로스(69)씨가 한국에서 간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마르코씨는 "조국인 페루에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많고 아직 제가 할 일이 많다"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한국까지 왔는데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았다"고 감사를 전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마르코씨에게 딸 킴벌리 루시아 키로스(30)씨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생체간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28일 전했다.

마르코씨는 일평생 미국과 페루에 오가며 부동산 건설 사업과 자선사업을 활발히 펼쳐왔다. 부동산 건설 사업으로 얻은 수익을 바탕으로 양로원 노인이나 저소득층 가정, 투병 중인 환아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 물품과 금전적 후원을 이어왔다.

그러던 중 2008년 페루에서 담낭(쓸개) 제거 수술을 받은 그는 지방간 소견을 듣게 됐다. 의사는 마르코씨가 음주는 물론 흡연도 하지 않는 점을 고려해 유전적 소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주치의에게도 검사 결과지에 대한 자문을 구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란 말을 듣고 별다른 치료 없이 넘어갔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고 지난해 9월부터 마르코씨는 배가 계속 불러오는 느낌에 페루 병원을 찾았다. 배에 물이 차는 복수 증상이었다. 지방간은 어느새 간 섬유화로 진행돼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한 올해 2월 다시 병원에 갔을 땐 복수가 심해지고 폐에도 체액이 축적된 상태였다. 간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간경화 소견까지 들었다.

이대로라면 신장까지 망가질 위험이 컸다. 선택지는 간이식뿐이었다. 그러나 페루에선 간이식이 가능한 나이가 65세까지로 제한돼 69세인 마르코씨는 수술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에선 수술은 가능하지만 뇌사자 간이식 대기자 명단에 오를 뿐 1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직접 방법을 찾아 나선 마르코씨는 생체간이식 수술법이 있단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생체간이식을 안전하게 시행하는 나라와 병원을 알아보던 그가 선택한 곳은 한국의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산타 분장을 한 마르코 씨(오른쪽 첫 번째)가 페루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산타 분장을 한 마르코 씨(오른쪽 첫 번째)가 페루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이후 마르코씨는 지난 5월 가족과 함께 1만㎞를 날아 낯선 땅 한국에 도착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첫 진료를 받았다. 의료진은 기증 의사와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딸인 킴벌리씨의 간을 마르코씨에게 이식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8월14일 아침, 마르코씨 부녀는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다. 킴벌리씨의 기증자 간절제 수술은 송기원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가 맡았고, 같은 과 이승규 석좌교수와 문덕복 교수가 마르코씨의 간이식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은 쉽지 않았다. 환자 간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간 혈관 압력이 높아 혈관 주변에 마치 거미줄처럼 핏줄(해면상 혈관종)이 심하게 엉켜있었다. 딱딱하게 굳은 간 일부는 하대정맥(인체의 정맥혈관 중에서 가장 큰 정맥)을 완전히 감싼 상태였다. 간을 떼어내다 자칫 다른 장기에 혈액순환이 정체돼 소장, 신장, 췌장 등 다른 장기가 붓게 될 위험이 컸다.

이에 이승규 교수는 일차적으로 혈관 분리 작업을 마친 뒤, 피가 안전하게 돌아 흐를 수 있도록 인공 길을 만들어주는 우회술을 시행했다. 이후 문덕복 교수가 굵은 혈관에서 간을 안전하게 떼어냈고 건강한 혈관을 찾아 새로운 간의 혈관과 무사히 이어 붙였다. 아침에 시작된 수술은 17시간이 지나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르코씨(왼쪽 첫 번째)가 페루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긍정적 사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마르코씨(왼쪽 첫 번째)가 페루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긍정적 사고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아산병원

딸 킴벌리씨는 수술 후 8일째 되는 날 퇴원했고 마르코씨도 순조롭게 회복해 수술 후 3주 차에 건강히 병원 밖을 나섰다. 부녀는 오는 29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승규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체절명의 말기간부전과 간암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찾는 병원이 됐단 것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고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간이식팀 의료진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르코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한국까지 날아왔고 난생처음 밟아보는 낯선 땅에서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았다"며 "한국에서 얻은 새 생명으로 조국의 어려운 사람들을 더 힘껏 도우며 살아가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초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로 간이식 9000례를 달성했다. 생체간이식만 연간 400례를 시행하며 기증자 간 사망률은 0%를 기록 중이다. 앞서 지난 5월엔 말기간부전과 진행성 간암을 앓던 60대 모로코 남성에게 두 아들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2대1 생체간이식'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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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효진 기자

머니투데이 홍효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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