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에 따른 과징금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은행들의 행정소송 여부를 둘러싼 셈법이 복잡해졌다. 거액의 과징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제재 수위가 대폭 낮아진 데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자본규제 부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최종 제재 결과를 검토한 뒤 이사회 논의 등을 거쳐 소송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4일 정례회의에서 홍콩 ELS 불완전판매 관련 6개 은행에 총 361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약 2조원을 사전 통보한 뒤 올해 2월 1조4000억원으로 감경했다. 이후 금융위 보완 요청에 따라 지난 6월 6000억원으로 낮췄고 이번에 추가 감경이 이뤄졌다.
은행들은 금융위의 최종 제재 결과를 받아본 뒤 소송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준법감시 부서 등에서 과징금 산정의 적정성과 법리적 쟁점, 승소 가능성 등을 검토한 뒤 경영진에 보고하는 절차를 거칠 전망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사회에서도 관련 내용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외국계인 SC제일은행은 국내 이사회 논의 외에도 그룹 경영진과 협의하는 절차를 거칠 가능성이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행정소송이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재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 측 항변이 제재 결과에 얼마나 반영됐는지와 과징금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초 은행권에서는 거액의 과징금을 수용할 경우 경영진의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정소송 가능성이 거론됐다. 이미 은행들이 투자자들에게 약 1조3000억원을 99%가량 자율배상한 상황에서 추가로 과징금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자율배상 과정에서 충당부채를 설정해 비용을 인식하고 실제 지급액만큼 이를 차감하는 방식으로 회계처리했다.
그러나 과징금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소송 가능성도 낮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금융당국이 지난 4월 제5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발표한 자본규제 완화 방안도 변수로 꼽힌다. 금융위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대규모 손실사건은 운영리스크 위험가중자산(RWA) 산정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원칙적으로 10년간 반영됐지만 최소 3년 반영하면 제외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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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배제를 위해서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실효성을 입증하는 등 금감원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특히 법률쟁송 종료 등 잔여 법률리스크를 해소했는지가 심사 기준에 포함된다. 소송 중에도 충분한 충당금을 적립했다면 법률리스크가 해소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자본규제 완화를 위한 손실배제 심사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거액의 과징금을 그대로 수용하면 이사회에서 배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이번에는 과징금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었고 소송이 길어지면 커질 RWA 부담도 고려할 수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 데에도 충분한 경영상 이유가 생긴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