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톡톡]취미로 시작한 작곡, 대가가 되다

[컬처톡톡]취미로 시작한 작곡, 대가가 되다

송원진 바이올리니스트
2012.02.05 16:59

[송원진의 스토리 클래식]해군장교 출신 러 국민악파 림스키-코르사코프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작곡 어렵지 않아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 특히 창작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그런데 여기 취미로 곡을 쓰기 시작해 유명해진 작곡가가 있다. 바로 문화예술계의 스티브 잡스라 할만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에게 독설을 퍼부었던 림스키-코르사코프다.

니콜라이 안드레에비치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 러시아인의 이름은 언제 봐도 참 긴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부모의 성을 둘 다 이어서 더 길게 만들었다. 이런 특이한 점을 가진 그의 이력은 더욱 화려하다.

러시아 음악사를 이야기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국민악파 5인조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정식으로 음악을 배워 본 적이 없다. 그는 뻬쩨르부르그의 해군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장교로 근무한 '바다의 왕자'였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게 갑판 위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아! 이 멜로디야!'라며 떠오른 악상을 적었을까? 그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은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이다. 피아노 전공자들이 열광하는 곡 중 하나인 '이슬라메이'를 작곡한 사람이다. 그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교향곡'을 초연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출렁이는 배에서 내려와 음악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곡을 쓰며 작곡가로서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이 된 페트로그라드 음악원에 교수로 재직했다. 또 황실성가대 지휘자까지 겸하기도 했다.

그는 미하일 글린카(1804-1857)가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러시아 음악사의 2세대다. 당시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 전문적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고, 많은 귀족들이 그랬듯 집에서 예술적인 소양을 쌓았다. 또 직업을 선택할 때는 자신의 꿈과 거리가 먼 군인, 법관 등 집안의 추천을 따라 해야 했다.

2세대의 러시아 음악가들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음악원이 탄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관현악법 원리' 등을 전문 음악인들을 위한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악파 5인조 멤버로서 러시아 전래동화나 전설을 오페라에 많이 사용했다. '사드코', '금계', '황제의 신부' 등 그의 오페라를 보면 그 특징을 알 수 있다.

↑ 오페라 '황제의 신부'(The Tsar's Bride) 포스터
↑ 오페라 '황제의 신부'(The Tsar's Bride) 포스터

국민악파 5인조 멤버 중 한 명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1839-1881)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오케스트라 구성을 재편성해 현재 우리가 듣는 버전을 완성했고, '스페인 기상곡', '세헤라자데', '러시아 부활제 서곡' 등 관현악을 위한 완성도 높은 곡을 다수 남겼다.

그의 음악은 러시아 민요와 함께 오리엔탈 풍이 살아있어 러시아인들은 물론 동양문화에 관심 많은 서방 사람들의 귀를 행복하게 해줬다. 뒤늦게 음악에 발을 들였지만 그가 편곡한 오케스트라 곡은 화려한 색채감과 투명한 느낌이 살아있고 누구나 듣기 쉽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지휘자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1907년 파리에서 러시아음악회가 열렸을 때 디아길레프의 초대로 자신의 작품들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늘 학생들의 편에서 가르치며 개인 교습도 무척 많이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학생들에게 받은 수업료가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재능이 있지만 가난한 학생에게는 저렴한 수업료를 받고 귀족이나 돈이 많은 학생에게는 굉장히 비싼 수업료를 받은 것. 하지만 비싼 수업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배우려는 학생은 넘쳐났다고 한다.

'발레 거장'이자 러시아 예술을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전파한 자신의 제자 디아길레프에게 "넌 음악에 재능이 없어"라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부었을 정도니 그의 단호함과 카리스마, 통찰력은 짐작할 만하다. 그 독설은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은 덕담이 되었으니 말이다.

취미로 시작해 유명인 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취미를 목숨만큼 사랑하고 끊임없이 개발하고 그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면 빛을 발한다. 다만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되는지 자신만의 노하우를 깨닫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일일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은...

오랜 시간 러시아에서 수학한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은 러시아의 광활하고 음울한 음악세계를 강렬하고 단호한 열기로 지극히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열정적인 연주자로 정평이 나있다. 현재 서울예고 출강,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원학교 시절 러시아 유학

-모스크바에서 17년 유학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 부속 중앙음악전문학교 졸업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 음악원 졸업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제 27회 주목할 예술가상' 수상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두루미 연주 대음

-G20 청와대 연주

-김연아 아이스쇼 '죽음의 무도' 연주

-음악 에세이 '불멸의 사랑 이야기' 저자

-한옥 속 클래식콘서트 '불멸의 사랑 이야기' 기획&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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