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무덤이 들려주는 518년 조선왕조 이야기

왕의 무덤이 들려주는 518년 조선왕조 이야기

이언주 기자
2014.02.15 05:19

[Book]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예나 지금이나 살아도 죽어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죽어서도 편히 눈 감지 못하는 자. 그들의 이름은 '왕'이 아닐까. 입에는 올릴지언정 마주하기란 쉽지 않은 그들을 쉽게 만나는 길, 그것은 바로 말 없는 무덤 앞이다. 산 자는 죽은 자의 무덤 앞에서 혼잣말을 하곤 한다. "참 복되게 살다 가셨소, 그런데 그 땐 왜 그랬소? 자, 술 한 잔 받으시오."

잔디와 나무를 가꾸고 정돈한 산소나 능은 공원이나 숲 같다. 특히 조선왕조의 숨결은 곳곳에 잘 보존된 왕과 왕비의 능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500년 넘게 이어졌던 한 왕조의 능이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며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조선왕조 518년, 27대에 걸친 왕과 왕비의 능 42기 가운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소풍이나 산책 삼아 들른 왕의 무덤 앞. 한 시대를 호령하며 막강한 권세를 누렸을 그들도 저 아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이제는 권좌의 영광과 애환을 들어볼 만하다. "어찌 그리 난폭하셨수? 형제도 눈에 안 보이던가요? 허허, 자식은 어찌 그리 많았소? 장희빈 여사, 간도 크시오. 당신 요즘도 유명합니다. 힘없는 왕으로 살며 궁궐 생활이 오죽 답답하셨을까. 요즘 태어났으면 참 좋았겠지요?" 제멋대로 떠들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조선왕조 518년을 되돌아보는 책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는 그렇게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는 것 같다. 이우상 소설가와 최진연 사진작가 가 직접 조선왕릉터를 누비며 옛 왕조가 전해주는 서늘한 교훈과 뒷담화를 글과 사진으로 담았다. 2009년 2권으로 출간한 것을 일부 다듬고 개정해 이번에 한 권으로 묶어 냈다.

책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부터 의친왕의 의왕묘까지 다루며 삶과 죽음을 통해 조선왕조 518년을 정리했다. 27대 왕과 그 일가들의 삶은 곧 조선의 역사다. 어린 조카의 목숨을 빼앗고 왕위에 오른 냉혈한 세조는 어린 자식을 잃고 비극에 잠긴 슬픈 아비였다. 왕의 여자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장희빈은 사약을 받는 순간 훗날 왕의 자리에 오를 세자를 저주했다.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알려진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소리 없이 살다 간 왕의 후손들과 궁녀·내시들의 삶도 함께 담았다.

저자는 "왕릉 순례는 '죽음'과 '역사'라는 두 가지 화두가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사색과 성찰, 휴식과 건강도 뒤따른다. 역사 속에서 오늘을 들여다보고, 나를 비춰보는 것. 그것이 언제든 가능한 도심 곳곳의 조선왕릉은 조선왕조가 후손들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이우상 글. 최진연 사진. 다할미디어 펴냄. 470쪽. 2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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