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마케팅 특강을 할 때 청중들이 재밌어하는 부분이 있다. '언력'(言力)이란 장이다. 언어의 힘이란 뜻인데 이어령 선생이 기고문에서 썼던 말이다. 클린턴이 대선 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던 것이나 냉전시대에 무섭고 폐쇄적이었던 소비에트 연방을 처칠이 '철의 장막'이라고 했던 파장을 생각하면 예스, 언력은 힘이 세다. 언력은 마케팅에도 잘 통한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보험 상품을 팔던 여자들을 보험 아줌마라고 불렀었다. 다소 낮잡아 보는 용어였다. 그러다가 S생명에서 생활설계사(라이프 플래너)라고 부르니 그 후로는 준 전문직으로 인식된다. 집에 정수기를 렌트하고 방문 관리하는 여성분들을 패션이나 스타일링 분야에서 쓰던 코디라고 하니 왠지 신뢰가 간다. 새벽에 각 집에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는 친근함과 친절의 대명사인데 그녀들을 모닝 케어리스트(Morning Carist)로 한다면 아침을 관리해주는 전문가 이미지가 강화될 것 같다. 1-2년 배워 커피 볶는 자를 바리스타라고 하니 이국적이고 전문가 같다. 반면 10년을 국물 내고 쫄깃한 면 뽑은 레알 전문가는 면장(麵丈), 면 마스터도 아니고 그냥 주방장이다. 소믈리에, 플로리스트, 패셔니스타···. 이런 언력 마케팅이 우리 사회엔 좀 더 필요하다. 언력엔 돈이 안 든다. 그러나 효과는 크다. 이게 전 칼럼에서 내가 제안한 창발적 효창성(效創性) 사례기도 하다.
이런 언력 사례는 의외로 많다. 80년대 초 서울대 경상계열엔 경제학과와 무역학과가 있었다. 무역학과라고 하니 무역상을 떠올려서 학문 느낌이 약했는데 국제경제학과로 이름을 바꿨다. 그 뒤로 많은 학과들이 이름을 바꿨다. 여자들 마케팅에도 잘 통했다. 90년대에 신촌에 고급 백화점이 들어오면서 미시란 말이 등장했다. 미스 같은 미세스란 뜻이다. 대-박. 2000년대엔 프로 직업에 돈 잘 벌고 결혼하지 않는 여자들을 골드 미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돈 잘 버는 노처녀보다 얼마나 듣기 좋은가. 정체성이 훌륭해지면서 그녀들은 남자대신 요가, 브런치, 해외여행, 명품을 당당하게 소비했다. 미국의 데이비드 브룩스가 만든 보보스도 꽤 소비와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다. 자유로운 보헤미안 성향에 부르주아의 돈을 가진 보보스. 우량주를 뜻하는 블루칩은 IBM의 로고 칼라에서 온 용어다. IBM은 세계인의 머리에 푸른 색 모범회사, 영원한 블루칩으로 새겨졌다.
이런 언력을 써 볼 수 없을까? 내가 문화관광체육부 산하기관에서 하는 아리랑 브랜드 세계화 추진 일을 잠시 도와줄 때다. 아리랑 정체성 문제와 저예산, 한국 젊은 층들이 아리랑에 관심이 낮은 것들이 문제였다. 그래서 아리랑 컬처 코드를 포착하는 동시에 저예산으로 아리랑의 한국 대표성을 알리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때 생각한 것이 '인천공항 이름을 인천 아리랑 공항으로 하면?'이었다. 거긴 세계 최고 공항이고 내 외국인을 합쳐 한해 수천 만 명이 출입을 한다. 인천 이름은 가져가더라도 거기에 아리랑을 붙이면 아주 저렴하게 훌륭한 인지도 제고 및 대표성이 획득된다. 아리랑엔 동시대적 이미지가 주어지고 공항엔 아리랑의 '신명'과 '어울림' 정신이 융합돼 운영 내용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이게 스토리가 있는 언력이다.
구글이 공유하는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이름엔 사람 원형질을 닮은 로봇이라는 꿈과 구글의 지향점이 녹아 있다. 아직 낯설지만 PC, 스마트폰, 태블릿에 고루 가능한 운영체제 중에 '우분투'(Ubuntu)라고 있다. 우분투는 남아프리카 반투어로 넬슨 만델라나 투투 대주교가 남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정신이며 전통으로 사랑했던 용어다. 이 우분투를 개발사인 캐노니컬 사가 운영체제 이름으로 하니 타계한 넬슨 만델라도 떠오르고 그가 평생 실천한 남아프리카 고유 정신과 운영체제 정신이 융합하면서 둘 다 훌륭해진다. 이런 것들이 돈 안 드는 컬처파워, 언력이다. 비주얼에만 매몰돼 언어가 빈약해지고 격이 폭락 중인 이때 언력도 구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