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황금기, 궁궐 사람들이 '수세식 화장실' 이용?

백제 황금기, 궁궐 사람들이 '수세식 화장실' 이용?

익산=김유진 기자
2015.08.20 15:43

[르포]유네스코 문화유산 '익산 왕궁리 유적'가보니… 왕궁 부엌, 화장실, 정원 등 발견

전북 익산에 위치한 백제 사비기 왕궁리 유적지 전경. /사진=김유진 기자 yoojin@
전북 익산에 위치한 백제 사비기 왕궁리 유적지 전경. /사진=김유진 기자 yoojin@

백제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인 7세기 말 제30대 왕인 무왕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 지난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선정된 이곳에서 최근 부엌의 흔적이 발견됐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를 포함해 고려 이전 시기 왕궁에서 부엌 터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그동안 이 시기의 부엌·화장실 같은 생활공간에 대한 흔적은 고구려 벽화인 안악3호분에 그려진 것이 유일했다.

20일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백제 사비기 왕궁 유적을 찾았다. 이번 제26차 조사에서 연구소는 조선시대 왕궁의 수라간에 해당하는 부엌 터인 '주(廚)'와 화장실의 흔적, 그리고 일본에 전파된 건축 양식을 발견했다.

전용호 학예연구사는 "익산 왕궁리 유적은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사비기 왕궁"이라며 "궁 내부의 정원과 화장실, 부엌, 건물 등의 모습이 확인되면서 점차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부엌 터. /사진제공=문화재청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부엌 터. /사진제공=문화재청

왕궁의 서남쪽에 위치한 부엌 터에는 철제솥과 항아리, 손도끼 등을 발굴한 구덩이가 군데군데 파여 있었다. 철제솥의 하부는 삼국시대 솥과 유사했지만 상부는 통일신라 이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연구소는 이 부엌 터 바로 옆 배수로에서 당시 사람들이 음식을 씻거나 설거지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모서리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 요리를 한 뒤 연기가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날 현장 답사에서 설명을 담당한 배병선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발견된 부엌 터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이 부엌이 왕궁 전체의 음식을 담당했다고 보기는 힘들고 다른 곳에도 부엌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시설 주변에서도 절구 등 조리도구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부엌 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검은 숯이 쌓여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숯이 쌓여있는 곳의 벽면 근처 흙은 불에 달궈져 색이 어둡게 변하고 단단해져 있었다.

숯이 쌓여있는 곳은 요리를 위한 용도가 아니라 오로지 난방을 위한 용도거나 외부에 설치한 별도의 연소시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부러 별도의 공간에 땅을 파서 설치한 점 때문이다.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석축의 모습. 용도는 화장실로 추정된다. /사진=김유진 기자
전북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발견된 석축의 모습. 용도는 화장실로 추정된다. /사진=김유진 기자

뿐만 아니라 화장실로 추정되는 공간도 발견됐다. 돌로 석축을 쌓은 깊은 구덩이는 물이 흐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 수세식 화장실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것이 배 소장의 설명이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이 발견된 바 있다.

배 소장은 "기능이나 용도는 아직 불명확한 상태이나 전반적인 구조를 볼 때 화장실로 추정되며 화장실에 사용된 목조의 흔적도 발견됐다"며 "돌로 쌓은 벽 위에 기둥을 세우고 상판을 걸치는 형태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백제의 건축양식이 일본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만한 증거인 '장량형 건물지'도 볼 수 있었다. 왕궁성의 대형 전각 건물 서남편에서 서쪽 궁장을 따라서 걷다 보니 긴 형태의 다양한 건물의 흔적이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공간이 한때 관청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니나와큐(난파궁), 아스카큐(비조궁) 등 일본에서 645~667년 지어진 건물 3군데에서 발견된 바 있는 양식이다. 익산 왕궁성이 지어진 시기가 554~641년 사이로 추정되는 만큼 양측 시설의 구조가 같다면 백제의 양식을 배워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조사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백제의 삶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1989년 발굴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곳이 왕궁이 맞는지 여부를 놓고 학계의 입장이 분분했다. 아직도 완벽하게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나 왕궁이었다는 결론이 다수설이고,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배 소장은 "왕궁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26년간 발굴조사를 해 오면서 이제는 궁의 생활을 알 수 있는 수준까지 다가갔다"며 "부엌, 화장실 등 당시 생활상을 보여줬다는 데 이번 조사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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