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인 '윤동주' 서거


'2월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 오라'
해방을 불과 반년 앞둔 1945년 2월. 일본에서 한 젊은 시인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보가 고향집으로 날아왔다.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29세 윤동주는 71년 전 오늘(2월16일)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혈장 대용 생리 식염수 체내 주입 실험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30일 중국 지린성 화룽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시 시를 써서 발표했다. 그는 1936~1937년 '병아리', '빗자루' '오줌싸개 지도', '무얼 먹구 사나' 등을 썼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때 '소년'지에 시를 발표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연희전문 재학 시절 그가 쓴 '자화상', '서시',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등은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끌어안은 작품으로 평가되며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애송된다.
그는 졸업을 앞둔 1941년 11월 서시 등 작품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려 했지만 일제의 검열을 우려해 실현시키지 못했다. 이후 윤동주는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릿쿄대학에 입학했다가 10월 교토 도시샤대학으로 전학한다.
교토에서 동갑내기 고종사촌인 송몽규를 비롯해 조선인 유학생과 함께 우리문화와 민족의식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그는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체포된다. 이후 좁은 독방 안에서 강제 노역을 하며 징역을 살던 그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절명했다.
사후 3년 뒤인 1948년 정음사에서 앞서 발표하려던 19편을 포함해 그의 작품 30편을 모아 유작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하게 된다.
1968년 그의 시비가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고 정부도 윤동주의 공훈을 기려 1990년 8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1995년엔 도시샤대학에 서시 시비가 세워졌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