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년 전 오늘…조선 국권피탈 첫 작업 시작되다

112년 전 오늘…조선 국권피탈 첫 작업 시작되다

박성대 기자
2016.02.23 05:45

[역사 속 오늘]한일의정서 체결

한일의정서 원본
한일의정서 원본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와 조선에서의 세력 다툼이 한창이던 1904년. 조만간 전쟁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대한제국은 그해 1월23일 양국의 전쟁 기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중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일본은 대한제국을 우군으로 만들어놓고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한·일간 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2월10일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러·일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10년 전 치렀던 청·일전쟁보다 길어진 병참선 문제를 해결하면서 대한제국 내 친러·중립파를 제거하기 위해 2만명의 군대를 한성(현 서울)에 주둔시켰다. 사실상 일본군이 한성을 점령한 상태에서 일본 공사 하야시는 대한제국에 공수동맹(공동 공격·방어) 협약 체결을 강요했다.

대외 중립 유지가 어려움을 인식한 대한제국은 어쩔 수 없이 112년 전 오늘(2월 23일) 외부대신 이지용을 내세워 하야시와 양국 간 협약인 한일의정서를 체결했다. 이미 이지용은 일본정부에게 1만엔을 받고 매수당한 상태였다.

이 의정서를 통해 일본은 군대 주둔 목적으로 헐값에 토지 991만㎡를 강제 수용했다가 이 가운데 380만㎡를 군용지로 사용했다. 이 군용지가 바로 현 용산 미군기지 자리다.

용산에 부지를 확보한 일본군은 이곳에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2만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만주 침공의 후방기지로 삼았다.

협약 체결에 따라 대한제국은 외국과의 조약 체결을 포함해 중요 외교 안건에 대해선 미리 일본 정부와 협의해야 하게 돼 사실상 독자적 외교권 수행이 불가능해졌다. 일본의 대한제국 보호국화가 한일의정서로 인해 시작된 셈이다. 협약 체결 뒤 6년 6개월만에 일본은 대한제국을 합병시켰다.

한일의정서 협약을 이끈 이지용은 한일 합병 후 조선 귀족 중에서도 가장 부유하게 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2007년 11월 이지용의 후손 재산에 대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다음은 한일의정서 조약 전문.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외부대신 임시서리 육군 참장 이지용과 대일본제국 황제 폐하의 특명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각자 상당의 위임을 얻어 다음과 같은 조항을 협정한다.

제1조 일한 양 제국 간에 항구불역(恒久不易)의 친교(親交)를 보지(保持)하고 동양평화를 확립하기 위해 대한제국은 대일본제국 정부를 확신하여 시정(施政)개선에 관해 그 충고를 수용한다.

제2조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 황실을 확실한 신의로써 안전 강녕케 한다.

제3조 대일본제국 정부는 대한제국의 독립 및 영토를 확실히 보증한다.

제4조 제3국의 침해로부터 혹은 내란 때문에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 혹은 영토 보전에 위험이 있는 경우 대일본제국 정부는 속히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대한제국 정부는 이러한 대일본제국 정부의 행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충분한 편의를 제공한다. 대일본제국 정부는 전항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군사 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임의로 수용할 수 있다.

제5조 대한제국 정부와 대일본제국 정부는 상호 승인을 거치지 않고는 장래에 본 협정의 취지에 위반하는 협약을 제3국과 체결할 수 없다.

제6조 본 협약에 관련하여 미비한 세목은 대일본제국 대표자와 대한제국 외부대신 간에 수시로 협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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