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년 전 오늘…조선, 청나라에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다

379년 전 오늘…조선, 청나라에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다

박신엽 기자
2016.02.24 05:45

[역사 속 오늘]'삼전도의 굴욕'…인조, 홍타이지에 삼배구고두례 행해

삼전도의 굴욕을 묘사한 부조 /사진=문화재청
삼전도의 굴욕을 묘사한 부조 /사진=문화재청

379년 전인 1637년 오늘(2월 24일),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7일을 버티다 청에 항복했다. 왕족들이 대피한 강화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청의 10만 대군이 압록강을 넘은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청은 성에서 내려온 인조에게 항복 의식으로 '함벽여츤'을 치를 것을 요구했다. 망자처럼 두 손을 묶고 입에 구슬을 문 뒤 빈 관을 메고 항복하라는 것이었다.

최명길, 김신국 등이 타협에 나서 항복의례는 함벽여츤이 아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었다.

이날 진시(辰時·오전 7~9시) 남색 융의(戎衣·무관복) 차림으로 남한산성을 나선 인조는 현재 송파구 석촌호수 부근인 삼전도(三田渡)로 향했다. 삼전도에 이르자 청 장수 잉굴다이(龍骨大)가 인조 일행을 청 황제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愛新覺羅皇太極)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인조는 먼저 홍타이지와 함께 '청과 조선이 한 집안이 됐다'는 배천(拜天) 의식을 치렀다. 이어 수항단에 오른 홍타이지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고백한 뒤 삼배구고두의 의식을 치렀다.

청 군사의 호령에 맞춰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세 번 절하는 동작을 3회 되풀이했다. 조선왕이 종묘·문묘·사직 또는 명나라 황제를 향해 삼배를 했던 적은 있지만 사람을 앞에 두고 삼배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홍타이지는 인조가 삼배구고두를 마치자 곧바로 단상 위로 이끌어 왕으로 예우해줬다. 하지만 조선과 청의 관계는 이전까지의 대등한 관계에서 군신 관계로 바뀌어버렸다.

인조뿐 아니라 신료들과 신료들의 처자 등도 삼배구고두를 했다. 의식은 오후 6시가 돼서야 끝났고 인조는 유시(酉時·오후 5시~7시)가 돼서야 귀성을 허락받았다. 청나라 수도 심양으로 끌려가게 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과는 이별했다.

환궁길에 오르는 인조를 두고 포로로 잡혀가는 1만명에 가까운 백성들이 울부짖었다. 왕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송파나루에서 배에 오를 때 어의(御醫)를 붙잡는 신하도 있었다. 인조는 이날 오후 10시가 돼서야 창경궁으로 돌아갔다.

최명길은 지천집(遲川集)을 통해 병자호란 이후 청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가 50만명에 달한다고 기록했다. 조선 후기 인구가 85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중 약 5%에 해당하는 백성이 끌려간 것이다. 포로들은 혹독한 행군을 거치고 심양으로 끌려간 뒤 조선인 매매시장에서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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