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만 전체 인구에 가까운, 2000만 명 찾은 '2016년 타오위안 등불축제'


대만인의 빛 사랑은 유별나다. 도시 전역에서 새 건물보다는 낡고 오래된 건물을 마주치기가 쉬운 이곳은, 밤만 되면 세상 어느 곳보다 화려한 곳으로 변모한다. 잿빛으로 낡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가리고 싶은 마음일까. 밤만 되면 골목마다 홍등이 켜지고 노랗고 파란 간판도 불을 밝힌다.
대만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축제도 모두 빛에 관한 축제다. 하나는 강 위에서 소원을 적은 등불을 날리는 '천등축제'고 다른 하나는 매년 정월대보름인 음력 1월 15에 시작되는 '등불축제'다. 지난달 22일 시작해 지난 6일 폐막한 '타오위안 등불축제'는 대만 인구 2300만 명 전부에 가까운 2026만 명이 다녀갔다.
대만인이 좋아하는 등불과 야시장이 한 곳에


폐막식이었던 6일 오후 4시.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았지만 축제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의 약 3배 면적인, 35ha 부지 곳곳에 설치된 등불 조형물들이 관람객을 반겼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 손을 꼭 잡은 연인 등 수많은 대만인이 조형물을 구경하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쪽에는 이제 대만의 상징이 돼 버린 야시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든 밀크티, 대왕오징어 튀김, 설탕 코팅을 한 딸기 등 다양한 먹거리가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한국인들이 잘 견디지 못하는 취두부와 고수 향도 곳곳에서 진하게 풍겨 나왔다.
하루 평균 200만 명이 다녀간 축제인 만큼 외국인도 많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관람객 대부분이 대만인이었다. 그런 만큼 외국인에 대한 안내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안내데스크 위에는 한자 안내서만 놓여있었고, 영어 안내서를 달라고 하자 안내원은 한참을 뒤져 겨우 하나를 찾아내 건넸다.
외국인을 위한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단점은, 뒤집어서 생각하면 현지 사람들의 삶과 분위기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약간의 어려움은 여행에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활력소가 되어주기 때문. 영어 안내도 찾기 힘은 넓은 축제장 안에서 여행자는 오로지 홀로 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기원 잘 몰라…그저 모두가 즐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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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수도인 타이베이의 중정 기념당 앞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이 축제가 규모가 커진 것은 2001년. 오랫동안 정권을 독차지했던 국민당을 물리치고 2000년 정권을 교체한 민주진보당 주도로, 이 축제는 전국 행사가 됐다. 한 곳이 아닌 나라 전체의 지역 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에서 매년 장소를 옮기며 개최된다.
축제 형태로 진행된 것은 26년 전부터지만, 원래 대만인들은 이 시기가 되면 집마다 등불을 내걸고 폭죽을 터뜨려왔다.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난무한다. 한나라의 문제(文帝)가 자신의 즉위일을 '원소절'이라 명한 뒤 등불 놀이를 하게 했다는 설, 당나라 황제가 여인들에게 등을 들게 하고 놀이를 즐겼다는 설 등 여러 이야기가 있다.
"기원이요? 잘 모르지만 대만 사람들이 정말 즐기는 축제에요. 대만 사람이라면 꼭 와야 하는 새해 행사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현장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던 대학생 샤오웨이씨(26·여)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곳곳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등불 앞에서 사진을 찍고 즐기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자 본격적인 빛의 축제가 시작됐다. 불이 들어온 등불의 영롱한 색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이들도 신이 난 듯, '미니언' '토토로'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 등불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등불에 한 해의 안녕을 빌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 하지만 환한 미소로 최선을 다 하는 중년 여성 안내원의 손에 이끌려 소원을 비는 쪽지를 내거는 곳에 갔다. 고사리손으로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아이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소원을 적었다.
쪽지를 매달려고 하니 안내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어디론가 향하며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한다. 등불로 만들어진 거대한 불상 앞에 피워진 향 위에 쪽지를 휘휘 내저은 뒤,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한 뒤에야 걸 수 있다는 의미였다.
소원 쪽지 외에도 손을 얹고 기도하는 동그란 등, 손으로 굴리고 지나가는 불경이 적힌 막대같이 복을 비는 행위를 할 수 있는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그 앞에서 복을 비는 대만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기도하는 것이 이들에겐 일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축제를 통해 한 해의 복을 기원한 대만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한 해를 견딘다. 매년 악화되는 경제 상황과, 언제나 중국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는 대만인에게 이 축제는 그저 놀이 이상의 의미일 것이다. 축제장을 나오며 등불에 담은 소망들이 환하게 피어나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