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1회> VR게임 24시간 생방에 도전하다

게임BJ 주노, 18일 WGN개국 1주년 특집 VR(가상현실)게임 24시간 생방송 진행해
기사 입력 20XX-08-01 10:24
온라인 게임채널 WGN(월드게임네트워크)은 이달 18일 개국 1주년을 맞아 VR(가상현실)게임 24시간 생방송 특집을 마련했다고 알렸다.
특히 이번 방송은 플레이를 시작하면 24시간 안에 엔딩 미션을 완수해야 한다는 콘셉트로 방영 전부터 시청자들의 화제를 모았다.
18일 오후 11시에 편성된 인기호러게임 ‘인사이드 오브 마인드2’-이하 IOM2-를 플레이할 인기 BJ(Broadcasting Jacky) 주노(26)는 개인 사이트 구독자 80만 명을 보유한 스타급 방송인이다.
그러나 BJ 주노는 지난 7월 초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로부터 신상과 과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BJ 주노는 이번 특집에 임하며 “제가 진행할 게임 ‘IOM2’는 유저의 심층 심리를 파고들어 공포의 근원을 건드리는 ‘사이코호러(psycho-horror)’게임”이라며, “이 방송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과거 조작 논란을 말끔히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WGN 개국 특집은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이후 WGN 공식 홈페이지(http://worldgamenetwork.com)를 통해 미방영분이 공개될 예정이다.
1.
“BJ 주노 씨. 방송 규칙은 간단해요.”
출연자 대기실에 들어온 PD가 주노에게 당부했다.
“주노 씨가 게임 속으로 들어가면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플레이 모습을 시청하게 될 겁니다. 게임 중간에 진행이 막혔을 경우, 제작진 측에서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다소의 힌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 주노 씨가 게임 도중 신체적, 정신적 상해를 입었을 경우 안전을 위해 방송이 도중에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주노 씨가 계약서에 서명한 바처럼 출연료는 지급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질문 있으신가요?”
소파에 앉은 주노는 PD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손끝만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던 PD는 들고 있던 펜으로 뒷목을 긁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지나간 뒤 주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저……제가 게임 도중 네티즌 반응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게임이 도중에 막히면 네티즌들에게 공략, 아니 도움을 요청하든가……전 늘 그렇게 방송해왔거든요. 채팅으로 소통하면서…….”
그러자 PD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압니다. 이번 방송 콘셉트가 평소 주노 씨가 진행하던 스타일과 좀 다르긴 하죠. 그렇지만 IOM2는 출시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신작 게임이니 네티즌 공략이 그렇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겁니다. 출연자가 외부의 도움을 얻으면 방송의 재미도 반감될 거고요. 주노 씨도 방송 베테랑이시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그러니까 어째서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방송 시작하기 직전에야 설명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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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는 PD에게 따지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으며 애꿎은 원피스 치맛자락만 쥐어짰다. 주노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PD는 다시 다정한 옆집 아저씨의 얼굴로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 게임은 플레이어의 뇌파를 분석해서 개인별 심리상태에 맞춘 가상현실을 만들어 내는 게 특징이잖아요? 요즘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과거나 트라우마를 낱낱이 파헤치는 데서 재미를 얻거든요. 안 그래도 주노 씨는 최근 과거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니, 이번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동정표를 따내시면…….”
“제 얘기는 진짜에요.”
이번에는 주노가 PD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
“거짓말 아니에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제 과거는 전부 사실이에요.”
그녀의 급작스런 반응에 PD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미안해요. 내가 우리 주노 씨 심통난 걸 잠시 잊고 있었네. 물론 나야 주노 씨를 믿고 있지. 그러니까 위에서 논란 어쩌고 하면서 주노 씨 캐스팅을 반대할 때 내가 다 막아준 거 아니겠어? 우리 주노가 예쁘고 인기 있으니까 루머도 퍼지는 거지. 막말로 인기 없는 무명이었으면 이런 논란이 있었겠냐고.”
PD는 갑자기 말을 놓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주노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지만 중년 남성다운 너스레라 치부하며 애써 넘겼다.
“정 온라인 반응이 궁금하면 스마트 워치를 통해 네티즌 반응을 전송해 줄게요.”
“네. 알겠어요.”
“주노 씨. 소문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오늘 방송만 대박 터뜨려주세요. 그럼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여론도 좋아질 겁니다. 아시겠죠?”
PD는 주먹을 불끈 쥐며 ‘대박’이라는 단어를 거듭 강조했다.
“BJ 주노 씨. 출연 15분 전입니다. 대기 부탁드립니다.”
마침 대기실로 들어온 방송작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주노가 엉거주춤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자 PD와 작가는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버렸다. 자기 할 일은 다 끝났다는 식이었다. 주노는 손에 들고 있던 대본을 세게 쥐었다. PD의 살집 많은 얼굴에 대본을 던져버리고 방송을 때려치운다면 얼마나 속이 시원할까. 내게 그럴만한 인기만 있다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그러지 못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기실을 나가기 전 그녀는 급히 파우더를 꺼내 얼굴에 찍어 발랐다. 그새 땀이 났는지 분이 약간 지워져 있었다. 거울에 비친 피부가 가뭄철 논밭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누렇게 뜬 얼굴빛과 건조한 피부를 가리기 위해 값비싼 수분 크림에 좋다는 파운데이션은 모두 써보았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주노는 스타일리스트도 없이 홀로 악전고투해야 하는 처지가 죽도록 한심하기만 했다. 얼굴을 두들기듯이 분을 바르던 그녀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파우더를 집어던졌다. 파우더 뚜껑 안에 붙어 있는 거울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흩어졌다. 주노는 눈물을 집어삼키며 밖으로 나갔다.
출연을 기다리며 스튜디오 뒤에 서 있던 그녀의 눈에 방청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부분 방송 진행을 맡은 유명 보이그룹 아이돌의 팬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방청객 좌석에 앉지도 못하고 구석에 선 채로 피켓을 들고 있는 BJ 주노의 팬들처럼 말이다. 대여섯 남짓한 팬들은 'Juno 여신님♡', '사랑해요. BJ 주노!'라고 쓰인 피켓 문구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이돌 팬들이 들고 온 현수막에 비해 애처로울 만큼 초라해 보였다.
주노의 등 뒤에서 남녀 스텝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좀 봐. 주노한테 아직도 팬이 남아 있었네?”
“그러게. 과거 조작 논란 다음부터 팬들이 우수수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주노가 그들을 노려보자 스텝들은 시선을 피하고 자리를 떠났다. 주노는 핑크색으로 네일아트를 받은 예쁜 손톱을 뽑아낼 듯이 매만졌다. 아, 안 돼. 이러다 또 기껏 기른 손톱을 뜯어내 버리겠어. 그녀는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물어뜯은 손톱에 수십만 원을 들여 연장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직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자리를 박차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인터넷 방송 복귀는 물 건너 가버릴 것이다.
나는 거짓말 따위 하지 않았는데도.
물론 지금까지 인터넷 방송을 해오면서 시청자들에게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진실만을 말했다고 맹세할 수는 없었다.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평범한 사연을 우습게 부풀리거나, 이야기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재밌는 부분만 골라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이야기에 다소 과장과 축소를 했다 해서 조작논란에 시달려야 한다면, 지금 스튜디오에 서 있는 방송인들 가운데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시청자들에게 최대한 솔직한 모습을 터놓기 위해서 학창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복되어 온 지독한 왕따 생활.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겪은 절친한 친구의 자살과 그로 인한 자퇴. 대학 진학 실패.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인터넷 방송.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Hera) 여신의 또 다른 이름인 주노(Juno). 그녀에게 닉네임을 지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살한 친구라는 대목이 나오자 채팅창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사연에 깊이 공감했고 제각기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천 명이 모인 채팅창은 순식간에 정신과클리닉에서 주관하는 집단치료 현장이 되었다. 그날 방송 내용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널리 퍼지면서, BJ 주노는 어려운 과거를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방송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주노에게 조작 논란이 덧씌워지면서, 사실은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마저 거짓말이 아니냐는 억지 주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송에서 과거 따위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듣기 좋게 예쁘고 좋은 이야기만 포장해서 내놓을 걸 그랬다. ‘진짜’ 연예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처럼 말이다.
주노가 초조해하는 동안 세 명의 기술자들이 공구와 점검 기기를 들고 그녀 옆을 스쳐지나갔다. 기술자들은 스튜디오에 설치된 가상현실 게임기기를 향해 달려갔다. 주노는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의 모습을 관찰했다.<☞2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