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국가재정(上)]개도국, 국가채무 비율 낮아도 재정위기 가능
전 세계가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도 국가채무 감축이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재정위기 광풍 속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나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지난해 392조8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3.5%인 반면 선진국 모임으로 꼽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97%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양호한 수준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OECD 등 국제기구들도 마찬가지다.

◇상대 평가의 위험= 하지만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비교 대상으로 삼은 OECD 평균 자체가 비상식적으로 높다. 여기에는 국가채무가 200%에 달하는 일본, 100%에 육박하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가들이 위험한 수준의 국가채무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균보다 낮으니 안전하다는 것은 위험한 판단이라는 지적이다.
나라별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상대평가의 함정도 경계해야 한다. 실제로 1982년 모라토리엄(지급불능)을 선언했던 멕시코의 국가채무는 GDP의 35.8%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나라 수준과 비슷하지만 국가부도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반면 국가채무가 GDP의 200%에 달하는 일본은 국가부도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대외신인도가 높은데다 대부분의 국채를 자국 국민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을 지켜내야 할 기획재정부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반값 등록금과 영유아 보육비 등 당장 복지예산을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국회와 국민들에게 인기 없는 균형재정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 대선을 앞두고 거세지고 있는 정치권의 공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조세연구원에서 2050년에 국가부채가 GDP의 130%를 넘어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위기감은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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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 시각의 위험=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느 선진국보다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노령화와 저출산 현상 때문이다.
저출산과 노령화로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재정수입은 제자리걸음 하거나 감소하는 반면 노령인구 급증으로 의료, 연금 등 복지지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세연구원은 현행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노령화 등 인구변화만을 고려해도 2020년 국가채무는 GDP의 42.6%로 높아지고 2045년에는 115.1%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국가채무가 2020년 52.8%, 2050년에는 113.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형수 조세연구원 재정분석센터장은 "의료 등 복지제도가 확대되거나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가채무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재정악화를 피하려면 조세부담 또는 사회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국가부채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급증하고 있는 공기업 부채도 재정에는 부담이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S&P와 피치는 지난해 "공기업 부채가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동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 재정건전성이 앞으로 5년 정도는 급속히 나빠지지 않겠지만 이런 안이한 시각은 굉장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며 "개도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채무 수준에서도 재정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