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대지진 이후 6개월···갈 길 먼 日 경제

[르포]대지진 이후 6개월···갈 길 먼 日 경제

도쿄·지바(일본)=유영호 기자
2011.09.12 08:02

전력난에 경제활력 '뚝'···소비 침체·관광객 급감 '이중고'

지난달 23일 일본 도쿄타워.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절전 모드로 들어가 야간 조명 시간을 단축해 온 도쿄타워가 저녁 8시부터 약 30분간 불을 밝혔다. 도쿄시민 50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 타워 앞 광장에 설치된 발전용 자전거 10여대의 페달을 밟아 불을 밝히기 위해 필요한 5500Wh의 전력을 충전한 것.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에 꺼졌던 도쿄의 상징이 다시 불을 밝히자 주변에 모인 도쿄 시민들 사이에서 큰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그 충격은 여전하다. 대지진이 일본을 바꾸고 있다. 변화의 파장은 전방위적이다. 의식주 전반의 생활문화가 모두 달라졌다.

◇전력난 등에 경제활력 '뚝'=일본 대지진은 전력 부족에 대한 우려를 크게 높였다. 원전 폭발로 실제 전력 공급량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무한정의 영구적인 에너지가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됐다.

↑전력난으로 야간 조명 시간을 단축한 일본 도쿄타워.
↑전력난으로 야간 조명 시간을 단축한 일본 도쿄타워.

일본의 전력난은 곳곳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다. 건물 실내 온도는 평균 28도 정도로 평년보다 2도 정도 올라갔다. 호텔, 쇼핑몰, 은행 등 관광객이 주로 사용하는 시설도 예외는 없다.

도쿄 거리에선 가동이 중단된 전광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낮 시간대 전철 운행 횟수도 평소보다 최대 30%까지 줄었으며 냉방 제한으로 열차 내 온도 역시 평소보다 높아졌다.

도쿄 3대 특급 호텔 중 하나인 뉴오타니호텔 관계자는 "도후쿠·수도권 지역에서 이뤄지는 계획절전에 동참하고 있다"며 "여름철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냉방의 경우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난에 따른 불편이 직접 체감할 정도에 이르면서 회식과 외식도 크게 줄었다. 밤이 되자 예전 같았으면 흥청거렸을 도심이 텅텅 볐다. 술집, 음식점이 몰려 있는 대표적인 번화가인 아카사카 지역에서는 아예 불을 끄고 영업하지 않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인적이 드물다 보니 밤거리는 호객꾼들로만 가득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남자 4명으로 구성된 일행이 나타나자 10여 명의 호객꾼들이 달라붙어 술값을 흥정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 에비스가든 플레이스에 부착된 절전 포스터
↑일본 도쿄 시부야 에비스가든 플레이스에 부착된 절전 포스터

호객꾼 마코토 타카유키씨는 "손님이 여전히 (대지진 이전의) 5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예전에는 호객꾼들이 한 번에 달려들지 않았는데 요즘은 손님이 많이 줄다보니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에서 30년째 한식당을 운영하는 재일교포 송희영 씨는 "가게 차리고 요즘처럼 어려웠던 적이 없다"며 "예전에는 새벽 5시까지 영업을 했지만 요즘은 1~2시면 정리하고 들어간다"고 걱정을 털어놓았다.

대지진의 여파에 어려움을 격기는 산업계도 마찬가지. 일부 제조업체들은 전력 수요가 몰리는 평일(월·화요욜)에 조업을 쉬고 주말(토·일요일)에 공장을 운영하는 등 고육책을 쓰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되고 있다. 광학유리업체인 호야는 대지진 이후 광학유리 생산거점을 중국의 산둥성에 설치하기로 했고, 미쓰이금속도 스마트폰 회로기판의 재료로 쓰이는 전해동박을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제조키로 했다. 화학소재업체 도레이는 한국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이 최근 대규모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약 70%가 생산 거점을 외국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난 등이 주요 이유였다.

◇일본 경제 짓누르는 '소비 부진'=전력난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소비 부진에 따른 2차 피해다. 소비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60%에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지만 대지진 이후 일본의 소비는 착 가라앉았다.

7일 찾은 일본 최대의 번화가 긴자 거리는 한산했다. 긴자 거리를 대표하던 명품브랜드의 약 30% 가량이 매장을 철수했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의 전언이다. 긴자 거리에 위치한 백화점 3곳도 고객 및 매출 감소로 평소보다 영업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최근 발표한 서비스산업 동향에 따르면 유원지와 테마파크의 지난 3월 매출은 229억8500만 엔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9.9% 급감했다. 이 부문 통계가 새로 개편된 2000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여가활동과 관련된 13개 서비스업종 가운데 11개 업종의 매출이 1년 전에 비해 줄었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9일 2분기 실질 GDP가 연율로 -2.1%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달 발표된 예비치 -1.3%보다 더 악화된 수치다. 지난 3월 이후 시작된 민간소비 부진이 지속, 기업들의 투자부진으로까지 이어진 것이 직격탄이었다.

이로써 일본은 지난해 4분기 이후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졌다. 일본의 실질 GDP가 3분기 연속 감소한 것은 2008년 2분기부터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이후 처음이다.

◇관광객 급감 또 다른 '악재'=일본의 또 다른 성장동력인 외국인 관광객의 감소도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일본을 찾는 외국인 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실제 지난 8일 찾은 도쿄 근교 지바현의 디즈니랜드. 예년에 비해 크게 줄인 관광객 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인기 놀이기구들의 대기시간은 약 30여 분. 대지진 이전까지만 해도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했던 줄이 4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관광객 감소로 디즈니랜드는 지난 2분기 분기별로 실적을 공개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고육책으로 입장권 할인 행사를 이례적으로 가을까지 연장하기로 했지만 매출이 회복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1∼6월 상반기 방일 외국인 수는 총 283만3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6% 줄었다. 이는 상반기 방일 외국인 감소폭으로는 50년 만에 최악의 실적이다. 7월 방일 외국인 수도 56만17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만6882명(36.06%) 급감했다.

비록 방일 외국인 감소폭은 4월 -62.5%, 5월 -50.4%, 6월 -36.0%, 7월 36.06%로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일본을 다시 찾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코트라 도쿄 코리아비즈니스센터(KBC) 관계자는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크게 감소했다"며 "최근 들어 감소폭이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외국인 관광수요가 언제 예년 수준으로 회복될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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