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인해 100명만 먹고 살았으면" 5대째 이어진 쪽빛 꿈

"나로 인해 100명만 먹고 살았으면" 5대째 이어진 쪽빛 꿈

이경숙 기자, 이나미 사회적기업기자단 기자
2014.11.08 05:55

[쿨머니, 소비는 투표다]<전통 계승 사회적기업 편>명하햇골

5대째 쪽 염색 전통을 잇고 있는 명하쪽빛마을 판각이네집은 사회적기업 (주)명하햇골과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5대째 쪽 염색 전통을 잇고 있는 명하쪽빛마을 판각이네집은 사회적기업 (주)명하햇골과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외국인이 재밌어 하는 한국말이 있다. '푸르다'. "한국에선 하늘도 푸르고 물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고 한다"고 들려주면 외국인들은 어떻게 하늘의 파란 색(Blue)이 산의 녹색(Green)과 같은 말일 수 있냐"며 놀란다.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예로부터 가장 찬란한 때의 자연을 '푸르다'고 표현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것, 그리운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색이었다. 그 색으로 옷을 물들여 입으면 사람들은 '쪽빛'이라고 말했다.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엔 마을 이름이 쪽빛이다. ‘명하쪽빛마을.’ 37가구 76명이 사는 이 작은 마을은 쪽빛 강, 쪽빛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쪽빛 강과 산을 두른 마을이 한반도 어디 이곳뿐이랴.

이 마을엔 예로부터 쪽이 많이 났다. 5대째 쪽 염색장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문도 있다. 바로 '판각이네 집'이다. 쪽 염색장 5대인 윤대중 씨가 부인 최경자 씨, 아들 판각이를 포함한 1남 5녀와 방문객들에게 쪽 염색을 가르친다.

지난 5월 판각이네에서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판각이 엄마’ 최경자 씨가 2012년 설립한 ㈜명하햇골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가업을 잇는 가족기업 것 같은 이 업체가 어떻게 사회적기업으로써 가치를 인정받은 것일까?

최경자 명하햇골 대표.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이수자이자 나주시사회적경제협의회 회장이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최경자 명하햇골 대표.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이수자이자 나주시사회적경제협의회 회장이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염색장 전수 받으니 이웃의 농기구 기술도 이어져

명하햇골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쪽과 양파를 키운다. 또, 쪽을 이용한 천연 염색 의류와 악세서리, 비누 같은 쪽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면서 염색교육, 축제운영사업을 벌인다. 축제 운영 수익은 모두 마을에 기부된다.

이런 일을 하면서 명하햇골은 나주시민과 취약계층 주민 7명을 고용했다. 3년 동안 1인 창업자를 매년 30명씩 양성했다. 주로 취약계층, 그 중에서도 여성 교육에 힘썼다. 최 대표는 “유지(有志)가 있었다"고 말했다.

"3년 전에 돌아가신 인간문화재이신 아버님이 입버릇처럼 늘 ‘나로 인해 100명만 먹고 살았으면’ 이라고 말하셨어요. 우리 이름 걸고 최소 100명만 먹고 살게 하고 싶어요.”

최 대표의 시부인 고 윤병운 선생(1921~2010)은 ‘전통 쪽 염색장’ 중요무형문화재 제 115호였다. 그로부터 내려온 ‘전통’은 마을에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최 대표는 “배우시려는 분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마을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며 “마을이 없어지지 않아야 우리 고유 전통이 존재하고 이어진다”고 말했다.

“옛 전통 기구들 중 이를 테면 옛 농기구를 만드는 분들이 아직까지 마을에 생존해 있으세요. 마을 안에서 서로의 물건을 사서 쓰면 사업에 지속성이 생기고, 그 자녀들이 전통을 전수받을 수 있죠. 우리가 쪽 염색의 업을 이은 덕분에 그에 필요한 도구들을 생산하는 사람들도 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전통과 마을을 유지하는 데에 사회적기업이 필요한 이유

나주주민과 취약계층들로 이뤄진 명하햇골 직원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나주주민과 취약계층들로 이뤄진 명하햇골 직원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판각이네 염색장 역시 마을사람들의 ‘덕’을 봤다. 이 염색장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농촌교육농장으로 선정되자 교육생, 체험객들이 늘었다. 이들에게 식사를 제공해야 했다. 부부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웃들이 협조했다.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가 돌아갔다.

그러다가 부부는 ‘우리가 마을 안에서 마을사람들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마을 안의 전통자원을 잘 활용하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겠단 확신도 들었다. 그렇게 주민들과 협력하여 탄생한 게 명하햇골이었다.

최 대표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라며 "이 마을에선 제가 젊은 축이라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통의 가치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젊은 사람들, 이를 통해 마을을 살리는 사회적기업이 지역의 마을엔 꼭 있어야 된다”고 덧붙였다.

매출을 묻자 그는 "아직 적다"고 말을 아낀다. "아쉽게도 아직 제품 판로는 취약한 편"이란다. 제품 판매수익은 주로 체험고객들한테서 나온다. 쪽빛 스카프가 가장 잘 팔린다.

중소기업청, 한국무형유산원, 문화재청 등 공공기관도 쪽 제품의 주요 판매처이지만, 규모가 크진 않다. 기업 운영비는 대부분 박 대표가 다른 기관에 가서 벌이는 위탁교육에서 나온다.

"염색작업이 워낙 전통방식이고 작업과정이 힘들다보니 시장에서 원하는 단가를 맞추기가 어려워요. 이 상황에서 ‘명하햇골’과 ‘염색장’을 이어가려면 당분간 판매와 교육, 두 가지 길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작은 마을 속 '우주'가 앞으로도 돌아가려면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들이 그만두지 않는 한, 현재 직원들과 함께 할 것"이라며 "취약계층에게 이 직장이 폐업된다면 그들에겐 목숨과 삶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로 인해 100명이 먹고 살길' 바란다며 시부가 남긴 뜻은 이제 그의 뜻이자 공동체의 뜻이 됐다.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이 마을에서 우주가 돌아가고 있다'고. 마을에 호미로 풀을 베는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생기면 새 수익원도 발생하고 농산물 구매로 기존 수익원도 이어져요. 지역 축제로 돈을 벌면 그걸로 마을 공동의 사업에 기부할 수 있어요. 마을 생태계가 돌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염색으로 전문성을 쌓은 염색장 이수자들이 직접 판로를 뚫고 제품을 파는 게 어디 쉬우랴. 더구나 명하햇골의 주력상품인 쪽빛 스카프는 한 장에 15만 원이다. 소비자가 비싸다고 느끼는 가격대다. 만약 명품 스카프라면 소비자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마케터들은 말한다. 스토리(Story) 즉 이야기가 쌓여 히스토리(History) 즉 역사가 되면 명품이 탄생한다고. 쪽 염색의 전통을 이은 명하햇골의 제품들은 명품이 될 수 있는 조건 하나는 갖춘 셈이다.

그런데 왜 명하햇골 제품은 명품으로 불리지 못할까? 소규모 사업자가 명품의 두번째 조건 즉 '다른 제품이 따라 잡을 수 없는 품질과 디자인'을 갖추는 건 혼자만의 힘으론 쉽지 않다. 당장 살아남기 위해선 매출부터 내야 하는 소사업자들은 대기업처럼 연구개발(R&D)에 집중할 수 없다.

소사업자가 제품의 품질을 높일 때까지는 생산에 대한 투자뿐 아니라 구매를 통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가 높은 생산품이 품질까지 갖출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윤리적 소비자는 '제2의 투자자'라 불린다. 쪽빛마을의 우주가 앞으로도 돌아가기 위해 지금 필요한 투자자이기도 하다.

예비사회적기업(주)힐링 체험투어가 주관한 전남사회적기업 체험행사에서 서포터즈들이 쪽 염색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예비사회적기업(주)힐링 체험투어가 주관한 전남사회적기업 체험행사에서 서포터즈들이 쪽 염색 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이나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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