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LA폭동 당시 유독 코리아타운의 피해가 컸던 이유가 공개되며 분노를 샀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92년 미국에서 발생한 LA폭동 사건을 다뤘다.
1992년 LA폭동은 백인 경찰들이 흑인 음주운전자 로드니 킹을 과잉진압했음에도 무죄 판결을 받자 분노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당시 25세 흑인 청년 로드니 킹은 음주운전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백인 경찰들에게 맞아 뇌손상을 입었다.
분노한 흑인들은 백인들이 사는 비버리힐스와 할리우드로 향하던 길에 있던 코리아타운에서 무차별적 약탈과 폭력을 저질렀다. LA 폭동으로 사망자 58명, 부상자 2400여명, 재산피해 7억 달러가 발생했다. 이 피해액의 절반 이상이 한국 교민들이 입은 피해였다. 미국 경찰들이 코리아타운을 지키지 않아 한인들이 자경단을 만들어 스스로를 지켰지만 한계가 있었다.
폭동이 일어난 직후에는 코리아 타운에 경찰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에게 전원 현장에서 철수하라는 무전이 왔다. 코리아타운에서 아무리 신고를 해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 철수한 경찰은 모두 비버리 힐스와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부촌에 사는 백인들을 지켰다.
흑인 폭도의 목적지가 원래 백인 거주지라는 이유로 경찰들은 모두 비버리힐스와 할리우드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이 백인 거주지를 봉쇄하자 흑인들은 코리아 타운으로 몰렸다.
당시 미국 경찰은 재판 이틀 전부터 코리아 타운 병력 철수 계획을 세웠다. 방송 패널들은 "폭동을 일찍 진압하면 흑인들이 더 자극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한인을 희생시켜 폭동을 잠재우려고 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경찰이 코리아 타운을 방치하자 한인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경단을 만들었다. 해병대, 특전사 출신 예비역들과 월남전 참전 용사, 어린 소년들까지 모였다.
당시 환갑을 앞둔 재향군인회장 조인하씨는 이 사건으로 오른쪽 발목과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우리가 미국에 와서 수십년 동안 모은 재산을 왜 털리냐. 빨리 퇴원해서 앞장서서 지키겠다"며 "우리나라 국민을 우리가 지켜야지 누가 지키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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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LA폭동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FBI까지 총동원한 끝에 6일 만에 일단락 됐다.
코리안 타운 교민들은 LA폭동을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뉜 폭동 사건이 아닌 4.29 사건이라 부른다. 분노를 분노로 되갚는 방식 대신 평화와 화합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