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서른세 살의 청년 디즈니+ ‘트리거’의 한도(정성일)를 보고 있자면,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까칠이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을 기본적으로 혐오하고, 그래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까칠하며, 때문에 눈빛엔 경멸이 깔려있다. 누가 말을 걸면 미간부터 찌푸리고 보는 기운이 얼얼한 남자다. 이렇듯 지독하게 염세적인 남자인데, 이상하게 밉지 않고 마음이 쓰인다.
한도는 말본새가 싸가지없어도 틀린 말은 안 하고, 사장·검사·재벌 할 것 없이 사람 봐가며 몸 사리지 않는다. 상사 오소룡(김혜수)이 한도에 대해 “예의 바르면서도 싸가지 없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동물 앞에선 한없이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나쁜 사람은 없다’라는 말처럼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는 한도의 모습은 천사 같다.
그리고 이 같은 설정을 전심으로 끌어안은 정성일 덕택에 까칠이 한도는 ‘트리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애틋한 인물로 존재한다. 정성일의 완전한 연기가 가시인 줄 알았던 한도에게서 향긋한 꽃잎을 보게 하고, 제 나이의 주름을 지운다. 실제로 마흔다섯 살인 정성일이 극 중 삼십 대라는 것에서 때때로 이질감이 들지만, 그것을 오래 생각하지 않게끔 밀도 높은 연기력으로 무마한다.

‘트리거’는 드라마 제목과 동명의 탐사 보도 시사 프로그램 팀의 취재기를 그린 작품이다. ‘트리거’에서 정성일이 연기하는 한도는 탐사보도 프로그램 ‘트리거’에 느닷없이 불시착한 낙하산 중고 신입 PD다. 인간에게 받은 상처가 한가득이라 아웃사이더를 자초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버라이어티한 사건 사고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똘끼와 독기가 가득한 ‘팀 트리거’가 되어 가고 있다.
인간이 싫다면서도 피해자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으면 가장 크게 울분을 터트린다. 같은 날 PD로 입봉한 강기호(주종혁)의 취재도 도와준다. 한도의 가자미눈은 변함없지만, 내면의 잔잔한 변화로 인해 회를 거듭할수록 그의 존재가 애틋해진다. 정성일은 한도의 변화를 눈빛 온도까지 달리하며 최상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모든 장면이 끊임없이 팔딱거리는 ‘트리거’에서 가장 차가워 보이지만 가장 뜨거운 존재인 한도. 그리고 이런 한도를 근사하게 형상화한 정성일로 인해 ‘트리거’는 더 큰 재미와 역동성을 갖는다. 배우로서 40대 중반이 돼서야 빛을 본 정성일은 그 무엇도 재는 것 없이 자신의 진가를 오롯하게 내보인다. ‘더 글로리’가 한 번의 우연이 아니었음을 ‘트리거’에서 다시 한번 진하게 증명한 정성일은 이제 자신의 이름 앞에 ‘믿고 보는’이라는 수식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