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성철은 자주 섬세한 배우로 불린다. 하지만 그 수식어만으로는 그가 영화 ‘파과’에서 연기한 투우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김성철의 투우는 20년 넘게 한 사람만을 추적해 온 킬러다. 무자비하고 광적인 동시에, 외롭고 비루하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지만, 정작 그 목적 너머엔 아무것도 없다. 삶의 이유를 타인에게 위탁해 온 인물. 김성철은 이 허기를 치밀하게 설계하고, 내면의 검은 물을 끝까지 건넌다.
“그냥 제가 이 작품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 행복했어요. 어쩌면 한국 영화에서 없던 시도였고, 세계적으로도 60대 여성 킬러라는 소재 자체가 시도하기 어려운 건데, 제가 함께했다는 게 너무 뜻깊었죠.”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제거해 온 60대 전설적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조각을 쫓아온 젊은 킬러 투우(김성철)의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민규동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제75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제43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김성철은 ‘파과’를 세 번 봤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처음, 기술 시사 때 한 번 더, 그리고 최근 언론 시사까지. 언론 시사를 보고 나선 “이젠 끝났다”라는 생각을 할 만큼 김성철은 온전히 자신을 작품에 내던졌다.

대선배 이혜영과의 액션 연기는 쉽지 않았다.
“이혜영 선생님에 대한 액션 정보가 없었어요. 안젤리나 졸리였다면 액션을 해온 걸 이전 필모그래피를 통해 입력할 수 있잖아요. 근데 이혜영 선생님은 ‘파과’가 첫 액션이에요. 몸 부딪히는 신이 완전히 가짜일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걸 컨트롤하면서 리드하는 게 쉽진 않았죠.”
김성철은 이혜영과의 만남을 “경외심이 드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 제가 일을 하면서 혜영 선생님을 상대역으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런 투우, 조각 같은 관계는 더더욱 그랬다. ‘파과’라는 작품으로 길게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저한테 선생님은 보물 같은 존재”라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성철은 ‘파과’를 통해 처음 액션 영화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의 뿌리는 뮤지컬이다. 수년간 무대에서 다져온 신체 감각은 카메라 앞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모든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았다. 그는 “투우 액션은 다 롱테이크였기 때문에 대역을 쓸 수 없었다”며 체력적 부담을 감당하면서도 액션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독자들의 PICK!
“저는 대역 한 번도 안 썼어요. 다 롱테이크여서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뮤지컬은 사실 다 액션이기 때문에 몸 쓰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어요. 특히 ‘파과’ 출연 결정을 할 때쯤 액션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만났죠. 액션스쿨 가서 기초 트레이닝하고 합을 몇 번 맞췄는데 무술 선생님이 안 나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파과’ 속 투우는 젊고 우월한 킬러지만 삶에서 존귀하게 바라봐주는 존재가 없다. 그가 쫓는 건 조각이라는 이름 하나, 살아온 인생 전부를 투사한 대상이었다. 김성철은 투우의 감정을 “집착”이라 말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랑, 존경, 그리고 삶의 유일한 이유이기도 했다.
“투우의 인생은 목적 없는 삶이죠. 삶의 이유는 조각이라는 목표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 보니 주변을 못 보게 되고, 사람을 죽이는 거에 죄책감도 안 느꼈을 것 같아요. ‘그래야만 했어’ 그렇게 믿고 가는 거죠.”
영화는 결말을 향해 폭주한다. 김성철은 마지막 반전을 위해 “2시간을 달려야 했다”고 표현한다. “2시간 동안 속여야 했다”는 말 속엔, 투우가 감춰야 했던 속내와 그가 준비한 감정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꼽은 가장 힘들었지만 성취감이 컸던 장면도, 역시 결말과 첫 등장이다.
“엔딩 장면과 투우 첫 등장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임팩트가 강해야 하잖아요. (신)시아랑 (김)무열이 형이 했던 과거의 서사와 지금의 모습, 조각의 서사를 다 느끼고 이를 쫓는 인물이 등장했을 때 못지않은 임팩트를 가져가야 했어요. 그래서 테이크를 17번 갔어요.”

김성철은 자신을 ‘연기 기술자’라 말한다. 하지만 그의 연기를 보고있자면 기술보다 예술이라는 단어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신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강하게 풍기는 잔향과 짙은 여운이 있다.
“저는 확실히 결핍 있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어릴 때 연기학원에서 처음 대사를 했는데, 안에 있던 화랑 울분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이게 무슨 경험이지 싶었죠. 저는 선천적으로 감정이 다양한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인물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결핍 있게 자란 건 절대 아니에요(웃음). 그리고 꼭 그것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서 앞으로 선하고 재밌는 것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