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 임수정 "'여전히 연기가 너무 재밌어요" [인터뷰]

'파인' 임수정 "'여전히 연기가 너무 재밌어요" [인터뷰]

한수진 기자
2025.08.24 12:00

'파인: 촌뜨기들'서 양정숙 역으로 강렬한 연기 변신
"정숙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
"배우로서 확장의 기회 기다려와…'파인'은 큰 행운이자 도전"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 임수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동안 얼굴', '맑고 투명한 인상', 그리고 '사랑받는 캐릭터'다. 데뷔 초창기부터 영화 '장화, 홍련'과 '…ing',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거치며 그는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고 싶은 순수한 얼굴로 대중의 기억 속에 자리해 왔다. '내 아내의 모든 것', ,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멜랑꼴리아'에서도 그는 늘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거나, 정의감을 은근하게 얹은 주체적인 여성으로 극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이하 '파인')에서 임수정은 아주 생경한 얼굴을 꺼내놓는다. 임수정이 '파인'에서 연기한 양정숙은 권력과 돈의 냄새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하고, 자신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사랑받는 여자가 아니라 욕망하는 여자로, 타인의 시선 속에서 빛나던 배우가 스스로 중심을 세우는 여성이 된 것이다. 이번 선택은 임수정의 연기 궤적에 또렷한 전환점을 새겨넣는다.

"정숙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이잖아요. 그간 제가 했던 인물들은 상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는 쪽이 많았는데 정숙은 완전히 달라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캐릭터라서 새롭게 느껴졌고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어요."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정숙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중성이다. 그는 권력과 돈 앞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하고 계산적이지만, 사랑 문제만큼은 의외로 순수한 결을 간직한다. 원작에서 정숙은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여성으로 묘사되지만, 강윤성 감독은 극화하며 캐릭터에 드라마적인 감정의 균열을 남겨뒀다. 그리고 이는 인물의 욕망을 입체적으로 증폭시키는 장치가 됐다.

"감독님이 각색하면서 사랑에 순수한 인물로 그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예컨대 선자(김민)가 납치된 뒤 희동(양세종)이 돈을 빌리러 왔을 때 정숙은 득실을 따지는 인물이지만, 희동에게만큼은 턱 내어주잖아요. 그게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마음이 담겨 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 감정이 개연성 없이 느껴졌다면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었을 텐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달하려고 애썼죠. 뒤로 갈수록 정숙이 내심 희동을 품고 있었을 거라는 뉘앙스를 감독님이 의도적으로 심어주셔서 저도 그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했어요."

이처럼 정숙은 관계 앞에서 한없이 차갑다가도, 사랑의 가능성에 흔들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권력과 욕망을 좇던 여자의 세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임수정은 그 균열을 통해 인물이 단선적이지 않도록 확장했고, 덕분에 정숙은 악독한 여성상이 아닌 욕망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존재가 됐다.

"정숙은 빈틈이 많아요. 그래서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죠. 원작에서는 악독하게만 그려졌지만 드라마에서는 인간적인 결이 더해져서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 같아요. 그게 정숙을 더 입체적인 인물로 만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파인'에서 정숙의 서사는 관석(류승룡)과 희동의 도자기 도굴 이야기와 나란히 흐른다. 즉 중심축은 남성 인물들의 욕망이지만, 그 틈새에서 정숙은 다른 한편에서 압축적인 장면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새긴다. 짧은 분량 속에서 캐릭터의 욕망과 감정, 서열과 권력관계까지 모두 담아내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안고 연기했다.

"분량이 많지는 않아서 장면마다 모든 걸 쏟아내야 했어요. 천 회장(장광)을 향해 ‘내가 쳐 죽일 년이지’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정숙은 그 순간에도 연기하는 인물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진짜로 오열했어요. 목에 핏대가 서고 눈물이 쏟아지니까 감독님이 처음엔 ‘너무 과한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이후 꿍꿍이를 드러내는 장면까지 이어서 보시고는 오히려 더 설득력이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외양의 변화 또한 캐릭터 구축에 결정적인 힘을 실었다. 정숙의 첫인상은 곧 외형적 강렬함이다. 풍성한 후까시 헤어, 짙게 그린 아치형 눈썹, 붉은 립스틱, 70년대 특유의 화려한 의상은 배우 임수정에게 있어 또 하나의 전환이었다. 기존의 세련된 이미지 대신 강렬한 색과 선으로 무장한 외양은 인물의 태도와 감정 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

"전작 '거미집'에서 70년대 여배우를 연기하면서 말투 연습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의 훈련이 정숙의 어투에도 자연스럽게 묻어나왔어요. 류승룡 선배님도 '거미집 말투가 나오네' 하시더라고요(웃음). 또 시대극이다 보니 분장팀, 의상팀과 꼼꼼하게 준비했어요. 눈썹 모양이나 헤어스타일 같은 세부적인 것들을 프리 단계에서 많이 맞춰갔습니다. 현장에서 제가 몰랐던 표정이나 발성이 튀어나올 때마다 감독님이 정말 좋다고 해주셔서 스스로도 연기의 확장을 체감할 수 있었어요."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임수정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임수정에게 정숙은 필모그래피에서 분명한 전환점이다. 정숙은 사랑받지 않아도 임팩트있게 성립되는 첫 캐릭터였고, 바로 그 지점에서 배우 임수정은 또 하나의 가능성에 도달했다. 그는 "배우로서 확장의 기회를 기다려왔다. 물론 사랑받는 캐릭터도 여전히 하고 싶다. 그런데 이번처럼 욕망을 드러내는 새로운 인물을 만나서 기뻤다. 연기의 폭을 줄이는 건 쉽지만 확장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저한테는 큰 행운이자 도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파인'이 제 연기폭을 확장해 준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하고 싶고, 여러 캐릭터를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연기가 여전히 너무 재미있거든요. 20대 때는 정말 연기밖에 몰랐고,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면서 훌륭하신 감독님들과 작업하며 많이 배웠어요. 시간이 지나면서는 개인적인 일상에 더 집중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 시간을 거쳐 다시 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찍으면서 연기에 대한 즐거움이 되살아났고, '파인'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속도는 조금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보여드릴 테니 저의 연기를 기다려주시고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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