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분기점 넘기며 탄탄대로... 극장가에 봄 불러와

인생에 ‘만약’이 없듯, 사랑에도 ‘만약’은 없다. 출발한 기차일 뿐이고, 기차는 후진하지 않는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은 반추할 수 있다. 한 때 뜨겁게 사랑했던 이들이 다시 만나 "만약 우리가 그 때 그랬다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배우 구교환, 문가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 ‘만약에 우리’의 큰 줄기다.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은 대학 시절 처음 만났다. 아주 ‘우연히’다. 둘은 같은 고향에서 서로를 모른 채 지냈고, 서울에서 각자 살다가, 귀향 버스에서 마주쳤다. 그 후 오랜 기간 친구로 지냈고, 우여곡절 끝에 연인이 된다. 그리고 지독한 사랑 끝에 헤어진다. 서로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둘을 둘러싼 상황은 그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고, 결국 둘은 서로를 할퀴다 결별한다. 대다수의 연인이 그렇다.
만약 이런 이야기라면 ‘만약에 우리’는 빤한 이야기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발 더 성큼 내딛는다.

먼 훗날 두 사람은 베트남 호찌민발 인천행 비행기에서 마주친다. 기상 악화로 비행기 이륙이 취소되고, 둘은 단순한 재회를 넘어 꽤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는 ‘흑백’으로 묘사된다. 주변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서로에게 서로가 세상의 중심이었던 과거는 총천연색인데, 원하는 직업을 갖고 안정적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은 흑백으로 그려진 건 상징적이다.
이는 은호가 만든 게임 속 설정과 맞물린다. 정원은 "에릭이 제인을 못찾으면 어떻게 돼? 새드엔딩이잖아"라고 물었고, 은호는 "세상은 흑백이 되어버려"라고 답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현재는 흑백 필름이다.
과거는 유독 아름답게 채색되는 경향이 있다. 일명 무드셀라 증후군이다. 그래서 기억은 추억이 된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이런 사랑도 드물다. 헤어진 후 과거를 후회하고 서로를 헐뜯는 이야기가 주변에 널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만의 과거를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하는 은호와 정원의 사랑은 수채화같다.

이는 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보육원 출신인 정원은 수시로 도망친다. 좀처럼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유독 ‘집’에 더 집착한다. 그렇게 방황하는 정원을, 은호가 반드시 찾아낸다. 정원은 "참 잘 찾아"라고 말하고, 은호는 "니가 찾을 수 있을 만큼만 도망치잖아, 매번"이라고 답한다. 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만 멀어지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 남녀의 모습은 대다수 비슷하다.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속삭인다. 은호가 "내가 진짜 잘할게"라고 사랑을 고백하자, 정원은 "끝이야? 심장도 떼준다 그래"라고 타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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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이 끝난 후 시작된다. 누군가는 죽일 듯 미워하고, 서로를 욕한다. 하지만 주위를 재지 않고 서로에게 몰두했던 ‘진짜 사랑’은 결국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은호와 정원이 딱 그렇다.
그럼에도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정원은 "은호야 난 너 만나고 눈물이 많아진 게 진짜 싫어, 지쳐"라고 말했고, 결국 두 사람은 지하철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은호는 이번에도 정원이 찾을 수 있을 정도만 도망쳤지만, 정원은 그 지하철에 타지 않았다. 그 행동은, 너무 분명한 이별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삶도, 사랑도, 가치관도…. 그리고 비로소 그 때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재회와 대화는 보다 성숙하고, 보다 솔직하다.
"내가 너를 놓쳤네"(은호) "내가 너를 놓은 거야"(정원) "서로가 서로를 놓친 거네."(은호)
"그 시절 나는 너를 정말로 사랑했던 거 알지?"(은호) "그 시절 나도 너를 정말로 사랑했다."(정원)
"다 해주고 싶었어"(은호) "다 받았어."(정원)
그리고 두 사람은 ‘선’을 지킨다. 과거의 감정으로 현재의 삶을 해치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응원할 뿐이다.
특히 정원의 마지막 한 마디는 둘의 과거를 완성시킨다.
"그 때 내 집이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서로를 위한 집을 짓고, 서로의 집이 되어 준다는 서사. 14년 전 영화 ‘건축학개론’이 떠오른다. 여기에 구교환, 문가영이라는 조합은 더할 나위 없는 연기로 훌륭한 화룡점정을 찍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슴 한 켠이 뻐근한, 근사한 멜로를 만났다.
윤준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