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이별부터 뚝?" 순서만 살짝 바꾼 현실 베이스 로맨스 열풍 [IZE 진단]

"아기와 이별부터 뚝?" 순서만 살짝 바꾼 현실 베이스 로맨스 열풍 [IZE 진단]

신윤재(칼럼니스트) 기자
2026.02.05 09:09
2026년 2월 기준으로 한국 드라마 로맨스는 역주행 로맨스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채널A의 '아기가 생겼어요'와 tvN의 '우주를 줄게'가 이러한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임신이나 사돈 관계를 통해 사랑이 먼저 시작되고 감정이 발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도영 감독의 영화 '만약에 우리다'도 시간의 역주행을 다루며 공감을 얻었습니다.
사진제공=tvN, 채널 A, 쇼박스 
사진제공=tvN, 채널 A, 쇼박스 

이 세상 모든 장르가 그러하듯, 로맨스에도 유행이 있다. 서로 다른 성장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만나 첫눈에, 또는 만나다가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한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감정의 극치를 경험하고, 조금씩 그 감정이 소원해짐을 느낀다. 결국 사랑은 싸늘하게 식고 헤어짐이 따른다. 이게 아니라도 결혼을 해도 이러한 희로애락은 따른다.

지금까지 동서고금의 극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로맨스의 흐름을 다양하게 다뤄왔다. 한국에서 특히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로맨스의 하위장르가 코미디가 곁들여진 로맨틱 코미디, 조금 더 치명적인 감정이 포함된 정통 멜로, 여기에서 복수와 핏빛 서사가 들어가는 치정극 정도로 분류된다. 여기에 최근에는 판타지 설정이 들어가 ‘타임 슬립’이나 ‘회귀물’ 또는 ‘평행세계물’ 등과 결합한다.

하지만 2026년 2월로 한정한다면 드라마 로맨스는 단연 ‘역주행’ 로맨스로 귀결된다. 사랑이 만남, 설렘, 교감 때로는 싸움, 교제로 이어져 서서히 고무되고 결국 결혼이나 출산으로 완성의 형태로 간다면 중간 과정을 쏙 빼놓고 결론부터 내는 식이다. 결론이 먼저 난 후 감정이 뒤따라온다. 과연 사랑의 물리적인 완성은 화학적인 완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지금 로맨스물의 ‘화두’다.

'아기가 생겼어요', 사진제공=채널A
'아기가 생겼어요', 사진제공=채널A

지난달 17일부터 방송을 시작한 채널A 주말극 ‘아기가 생겼어요’는 이러한 역주행 로맨스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정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냉철한 성격의 재벌 2세 남자 두준(최진혁)과 맥주의 열정을 바친 희원(오연서)이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이후 아기가 생기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보통 이러한 설정은 ‘혼전임신’ 코드와 결부돼 과거였다면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줄거리였지만, 결혼의 형태가 다양화한 현재에는 로맨스의 일부로 여겨진다. 남녀가 몸의 대화를 먼저 한 이후 마음의 교감을 얻을 수 있다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나머지가 모두 같고, 둘이 만나 평범한 사랑을 했다면 변별력이 없었을 작품은 사랑이 없는 임신에서 사랑을 채워가는 역주행을 보여준다.

노정의와 배인혁이 출연하는 tvN 수목극 ‘우주를 줄게’도 기본 얼개는 비슷하다. 각자 사진작가 어시스턴트와 푸드회사 사원인 선태형(배인혁)과 우현진(노정의)은 각자 형인 선우진(하준)과 우현주(박지현)가 부부인 사돈 사이다. 형제는 원수, 자매는 절친인 다른 형태지만 각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형과 언니의 부부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사돈처녀와 총각 사이에는 덜컥 아이가 떨어진다.

'아기가 생겼어요', 사진제공=채널A
'아기가 생겼어요', 사진제공=채널A

비극적인 배경을 가진 서사이지만 극은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른다. 귀여운 아기의 외모와 육아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고 요령이 없는 두 남녀가 덜컥 같은 집에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아기가 생기는 과정은 다르지만 ‘아기가 생겼어요’의 기본 역주행 서사를 가져가는 것이다. 여기에 사돈 남녀라는 과정을 추가하고, 각자의 형제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는 성장기가 보태진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영화에도 이러한 역주행 로맨스가 있다. 김도영 감독의 영화 ‘만약에 우리’다. 구교환과 문가영이 주연을 맡은 영화는 앞선 작품들과 같이 관계의 역주행이라기보다는 시간의 역주행에 가깝다. 2000년대 말을 배경으로 우연히 여행 중 만난 남녀가 조심스럽게 사랑을 시작했다 정점을 맛보고, 마음이 헤져 이별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로맨스가 7년 만에 국내 관객 200만을 넘기는 등 공감을 산 이유는 10년 정도가 지나 다시 우연히 만나 지난 사랑을 되돌려 회상하는 시퀀스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으로 설정된 공간에서 만난 남녀는 한 공간에서 예전을 추억하고, 어렸기에 영글지 못했던 이별을 성숙한 모습으로 마주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아… 그때 이랬었다면’하고 사랑에 있어 후회되는 점을 두 명의 배우가 대리로 처방해준다.

'만약에 우리', 사진제공=쇼박스
'만약에 우리', 사진제공=쇼박스

세 작품은 역주행이긴 하지만 판타지 설정이 들어가거나, 시간선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상식선의 역주행을 보여준다. 남녀가 만나 임신부터 하거나, 사돈 사이에 형제의 사고로 갑자기 아이가 남겨지는 사연은 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남녀가 헤어진 후 우연히 만나 과거의 일을 돌이키는 순간도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다.

이들의 감정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이 아니라, 있을 법한 이야기이므로 조금 더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편집이 그러하듯 시간의 순서만 다소 바꾸면서 로맨스에 변주를 가져온다. 그동안 너무 많은 작품들이 회귀물이나 ‘타임슬립’ 등의 형태로 난무하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조금 더 현실적인 로맨스 그렇다고 뻔하지 않은 로맨스를 원하는 대중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AI(인공지능)가 일상이 되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세상이 됐지만 한쪽에서는 모두가 땀을 흘리고 뛰어노는 ‘경도(경찰과 도둑)’ 놀이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AI나 각종 숏츠 콘텐츠가 일상을 잡아먹지 않았던 10년 전 2016년을 ‘밈(Meme)’처럼 즐기는 문화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비대면, 평행우주 등으로 비선형으로 나아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선형적인 서사를 그리는 마음도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역주행 로맨스는 지금도 있지만, 구미호를 다룬 SBS ‘오늘부터 인간입니다만’이나 곧 공개될 MBC ‘21세기 대군부인’ 등 판타지 설정의 로맨스에 도전을 받을 예정이다. 상상이 너무 뛰어난 시대, 오히려 곁에 있는 이야기가 더욱 친근한 대중들의 회귀본능이 이러한 역주행 로맨스를 이끌고 있다.

신윤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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