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이어 '세이렌' '건물주'서 욕망의 졸부로 미친 존재감

이름에 ‘금’이 들어있기 때문일까? 배우 김금순은 유독 돈과 관련된 욕망의 캐릭터를 만날 때 빛을 발한다. tvN 월화 드라마 ‘세이렌’의 옥션 회장 김선애와 토일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의 현금부자 전양자로 동시 출격 중인 김금순을 보라. 두 작품 모두에서 김금순은 욕망에 충실하고 충직하다 못해 지독한 모습이다. 물론 결은 조금 다르다.
‘세이렌’의 김선애는 비밀이 많다. 겉으로는 푸근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허구한 날 사무실에서 도미찜을 만들고, 사골국을 고아 담고,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보면 미술품 경매회사 회장이 아니라 배포 큰 식당가 사장님 같기도, 조금 억세지만 푸근한 엄마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건 김선애가 경계심을 풀기 위한 위장전술일 뿐. 그 형형한 눈빛에선 욕심을 감출 수 없다. 미술품을 감별하는 안목이 뛰어나 지금의 위치에 올랐지만, 김선애는 여전히 가난했던 과거와 현재가 상충되는 이율배반적인 인물이다. 남 앞에선 오페라를 들으면서도, 혼자가 되자마자 정신 사납다며 오디오를 끄곤 트로트를 흥얼거리는 여자가 김선애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의 전양자는 세정로의 유명한 현금 부자이자 음식점 평북관의 주인이다. 한마음빌딩 건물주인 김노인(남명렬)과 모종의 사연이 있는 듯, 이 인물 역시 비밀이 있지만 김선애에 비하면 매우 투명하다. 어느 정도로 투명하냐면, 칠순잔치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근육질을 자랑하는 젊은 남성들의 이벤트를 보며 노골적으로 즐거워하는 인물이다. 그 와중에 ‘벌크’보다는 ‘데피’된 몸에 집착하는 등 트렌드에 민감한 건 덤. 돈에 대한 반응도 명확하다. 돈을 쓸 땐 쓰지만 쓴 만큼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해야 한다. 오죽하면 납치됐다 돌아온 딸 전이경(정수정)에게도 “너 나한테 (몸값) 30억 빚졌다”라고 말할 만큼 계산에 철저하다.

되짚어보면 김금순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캐릭터들도 모두 돈 좀 주무르는 인물들이었다. 두꺼비를 연상케 하는 투덕한 얼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서사는 다르지만 타고난 ‘올드머니’가 아니라 바닥부터 시작해 생활감이 찐득하게 묻어나는 인물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백일홍을 보자. 백일홍은 찜질방에서 세신사로 이름을 날리며 합법적으로 돈 좀 벌면서도, 유사 가족 사기단을 운영하며 큰 돈에 대한 욕심을 놓치지 않는 인물이었다.
사기를 치려는 집안이 초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에 두려워하며 주저하는 주인공 도다해(천우희)에게 “귀신 돈은 돈 아니냐?”라며 매섭게 몰아세우면서도, “온 김에 (목욕탕에) 뜨끈하게 지지고 돌아가”라고 챙겨주는 듯한 느긋한 말투라니. 그 절묘한 밸런스의 조절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도다해를 거두며 밥을 챙겨주면서도 악착같이 빚을 받아내는, 좋아할 수도 그렇다고 쉬이 미워할 수도 없는 사기꾼의 묘한 이중성을 김금순은 특유의 눈빛과 존재감, 그리고 생활력이 묻어나는 연기로 이질감 없이 표현해냈다. 어디, 외곽 동네 찜질방에 가면 그와 같은 사장님을 만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달까.
‘엄마친구아들’에서 혜화동에서 이십 년째 부동산을 하며 화려한 언변으로 계약을 따내는 수완가 도재숙이나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349번, 그리고 영화 ‘야당’에서 장어집 사장이자 북한산 마약밀수조직 총책이었던 김학남 등도 돈과 밀접한 욕망의 인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폭싹 속았수다’의 제니 엄마, 김미향이 압도적이었다. 금명(아이유)에게 서울 아파트를 사줄 테니 딸의 학력고사를 대리시험 봐줄 것을 제안한 김미향은 ‘폭싹 속았수다’의 날고 기는 캐릭터 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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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부 출신으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 졸부가 된 것으로 보이는 김미향은 김금순의 존재감을 입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특히 “내가 선생님한테 흑싸리를 깔아 줄 테니까 선생님은 먹고 고도리를 하셔”라든가 “각자 잘하는 걸로 먹고사는 게 응당, 마땅, 고도리 아니에요?” 같은 대사를 찰떡같이 소화해 생활 속에서 깨알같이 인용할 수 있는 명대사로 만들어낸 내공이 어마무시했다.
‘세이렌’과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봐도 김금순의 캐릭터는 주도적으로 움직이거나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이렌’의 주인공 한설아(박민영)가 오랜 시간 겨냥한 인물이 김선애 회장으로 예상되는 만큼, 앞으로 김선애의 욕망이 어떻게 폭주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 듯.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도 ‘영끌 건물주’ 기수종(하정우)의 건물을 두고 빌런 포지션의 리얼캐피탈과 한바탕 전쟁을 벌일 것으로 보이니, 녹록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게 분명하다. 이미 딸을 납치한 납치범과의 몸값 거래에서도 “거래에서 중요한 건 기세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바 있으니, 기대가 크다.

최근 개봉한 영화 ‘메소드연기’에선 노래와 춤으로 묵직한 반전 감정을 선사하는 현실적인 엄마의 얼굴로 관객을 휘어잡은 김금순. 그렇지 않아도 ‘폭싹 속았수다’ 이후 염혜란, 이정은, 장혜진, 정영주와 더불어 차세대 국민엄마 후보로 손꼽히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새로운 얼굴이 되어 나타날지 궁금할 뿐이다. 분명한 건 김금순이 욕망으로 이글거릴수록 지켜보는 우리는 무척 즐겁다는 것!
정수진(칼럼니스트)